[OSEN=박현민 기자]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나오는 '그밥에 그나물' 식이 아닌, 식상함을 한 겹 벗겨내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그런 배우가 절실했다. 이런 대중의 욕구에 응답해 첫선을 보인 배우 중 한 명이 바로 시트콤 '감자별'에 출연 중인 서예지다.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 보면 눈길이 절로 가는 묘한 매력을 지닌 신인 연기자 서예지를 합정동 OSEN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꾸밈없는 투박한 웃음과 털털함, 얼굴과 매치되지 않는 저음의 목소리는 서예지를 한층 특별하게 느끼게 이끌었다.
# 카메라 앞에서 정식 데뷔…놀라운 경험
올해 3월 SKT CF로 연예계 데뷔, 같은해 5월 배우 정우성이 메가폰을 잡은 삼성 갤럭시 S4 브랜드 필름 '나와 S4 이야기-4랑'편에 출연하며 '정우성의 여자'로 불려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 '시트콤의 거장'이라 불리는 김병욱 PD의 발탁으로 tvN 일일시트콤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에 합류했다. 분명, 눈에 띄는 파격 행보다.
"놀라움 그 자체죠. 카메라 앞에서 여러 스태프 앞에서 내면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니…아직 많은 걸 보여드릴 수준은 아니지만요.(웃음) 현장에서 선생님들께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감자별'은 제게 첫 작품이자 선물이에요."
'감자별'은 시트콤이지만, 김병욱 PD 특유의 세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어 이순재, 노주현, 금보라, 오영실, 김광규 등 경험과 경력이 풍부한 선배 배우와 여진구, 하연수, 고경표, 서예지 등 젊은 연기자들이 촬영장서 한데 어우러진다. 신인으로서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을 터. 하지만 서예지는 무슨 소리냐며 오히려 손을 내젓는다.
"선생님들이 너무 잘해주세요.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냐', '딸 왔냐'며 안아주시고, 연기 지도까지 해주시거든요. 이순재 선생님이 발음 하나, 톤사용, 눈표정, 행동 모션을 직접 알려주실 땐 눈물이 날 뻔했어요. 쉴 때는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시는 데, 매번 앞에서 종이에 잘 받아 쓰고 있어요."
이순재로 시작된 연기 선배들의 따뜻한 에피소드는 노주현, 금보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웃음이 많은 노주현, 살갑게 챙겨주는 금보라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서예지가 앞서 말한 '감자별은 선물'이라는 말이 십분 와닿았다.
# 독특한 캐릭터 노수영 역, 실제 성격? "정반대"
서예지가 '감자별'에서 맡은 역은 노수동(노주현 분)의 막내딸 노수영. 자유분방한 수영은 사랑에도 일상에도 변덕이 끝없다. 아침에 설�다가도 저녁이면 식을 정도로 감정 기복이 엄청나다.
"실제 성격은 반대에요. 근데 요즘엔 캐릭터에 몰입했는지, 주변에서 다 '비슷하다'고 해요.(웃음) 음료를 고를 때도 메뉴 변화가 없어요. 하나로 꾸준히 미는 편이죠. 근데 감독님이 왜 그런 캐릭터를 줬는진 알 것 같아요. 밝을 때도 시크하고, 싫으땐 냉정하게 싫고…저음인 내 목소리와도 관련이 있겠구나 싶어요."
'감자별' 4회에서 뒤늦게 등장한 서예지는 극중 연인이었던 줄리엔(줄리엔 강)과 비행기 안 키스를 나누는가 하면, 유창한 스페인어를 사용해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2년간의 유학생활로 체득한 서예지의 스페인어는 이후에도 줄곧 회자됐다.
"감사했죠. 신인 연기자가 첫 등장에 키스신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으니깐요. '쟤는 누구지?' 정도의 궁금증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스페인어로 이슈가 된 것도 좋았지만, 스페인어만 부각돼 낙인찍히는 건 또 싫어요. 앞으로 감독님이 수영 캐릭터를 잘 만들어 줄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스페인어 이외의 장기를 묻자, 종이접기 자격증, 팝아트 자격증, 성교육 자격증 등 '독특한 자격증'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교회에서 초등부 교사를 하면서 애들한테 관심을 갖게 됐고, 성교육 자격증을 땄어요. '자식을 낳게 되면 교육을 잘해야 겠다'는 생각도 컸고, 주변 선생님이 '성에 대한 걸 잘 알아야 한다'고 귀띔해준 영향도 있었어요. 종이접기도 본래는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로 했는데, 아이들에게 접어주다보니 취미가 자격증으로 이어졌어요."
# 외모보다는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가 목표
당초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서예지는 스페인 유학시절 우연히 한국에 들어왔다가 거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몇 번의 거절 끝에 결국 지금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기를 해본 적 없고, 춤도 노래도 못한다고 거절했어요. 그러다 결국 3개월만 연습 해보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거죠. 근데 사춘기 시절 그런 생각은 있었어요. '예쁘진 않지만 언젠가 TV에 나올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요. 그게 맞았나봐요.(웃음)"
재능은 분명했다. 서예지는 여느 신인 연기자들과 달리 첫 등장부터 꾸준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 김병욱 PD가 제작발표회 당시 "3년 후면 굉장히 크게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던 게 이해됐다. 당시 김 PD는 서예지에게서 수애의 느낌이 묻어난다고 했다.
"너무 감사했어요. 한편으로는 '수애 선배님이 이 기사를 보시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들었죠.(웃음) 아무것도 없는 신인인 절 그렇게 믿고 아껴주시는 감독님께 꼭 보답하고 싶어요. 화면에 예쁘게 나오기보단 감독님의 마음에 들고,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연기를 할래요. 망가져도, 자연스러운 연기요. 외모로 기억되기 보다는 연기로 칭찬 받고 싶어요."
밝고 생기가 넘쳤지만, 한편으로는 1990년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진중함도 탑재했다. 우연처럼 접어들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내딛고 있는 그는 앞으로의 목표도 꽤나 명확했다.
"갈대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그렇게 흔들리고 싶어요. 이미지에 치우치지 않고 작품마다 갈대 같은 연기자요. 박원숙 선배님의 연기를 정말 좋아해요. 작품 속에서 욕하는 것마저 자연스러운 그런 '진짜 배우'가 저도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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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