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누구 같아요?"

호앙(25)이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입가에 장난기가 어렸다. 단박에 대답을 못하자 호앙이 까르르 웃는다. 친구 컨립(23)과 사랑(22)도 따라 웃었다. "저예요. 임신했을 때 이렇게 때지(돼지) 같았어요(웃음)." 호앙이다.

이 여인들은 캄보디아에서 왔다. 경기도 성남에서 서울 인사동까지 나들이를 온 건, 자기 얼굴이 실린 사진들이 '작품'으로 전시되기 때문이다. 20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룩스에서 개막한 '대륙을 횡단하는 여성' 전(12월 3일까지)이다.

'황금투구' '여자의 집' '트윈스' 등 가족과 여성을 테마로 13년간 작업해온 사진작가 이선민(45)의 전시다. "분당에 10년간 살면서도 성남 지역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어요. 어느 봄날 태평동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다가 아이 손을 잡고, 또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향해 걸어가는 이주 여성들을 보았지요.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주고받으며 거리낌 없이 웃는 그녀들에게 저도 모르게 이끌렸던 것 같아요."

20일 서울 인사동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와‘모델’들. 왼쪽부터 이선민, 사랑, 호앙, 컨립,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다. 뒤로 보이는 사진은 성남중앙시장에 장 보러 나온 세 여인을 이선민씨가 찍은 작품.

선뜻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이주 여성 하면 남편 폭력으로 결혼 한 달 만에 죽음을 맞은 베트남 신부 사건 같은 것만 떠오르는 거예요. 무서웠고, 그래서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밀어놓고 싶었죠."

촬영 작업도 순탄하지 않았다. "경계하고 불신하는 태도가 완강했어요. 그들 탓이 아니죠. 우리의 차별적 시선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래서 더욱 강건한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만든 거예요. 여러 번 맥없이 발걸음을 돌리며 1년 가까이 카메라를 놓고 있었는데, 지난 3월 우연히 호앙을 다시 만났어요. 저에게 처음 미소를 보여준 여성이었죠. 그사이 아기를 낳았더라고요. 호앙을 통해 캄보디아 친구들을 소개받았고 그들과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주말농장도 가며 벽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이주 여성들에게서 이씨는 '대범하고 건강한 모성'의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꿈'을 찾아 대륙을 횡단한 여성들이잖아요. 유목민처럼요. 인천공항에 입국할 때 들고 왔다는 호앙의 소지품을 촬영하다 울컥했어요. 결혼 증명서와 여권, 비행기 티켓, 주민증과 전통 치마 한 벌, 그리고 친정엄마가 주었다는 1달러 지폐 서너 장이 전부였죠. 결혼 이주에 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을 텐데도 낯선 땅, 편견과 차별로 가득한 땅으로도 들어와 살려는 그녀들의 에너지가 놀라웠어요.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을 거예요."

그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 공동체적 유대감도 이씨에겐 신기했다. "뭘 해도 같이 해요. 시장도, 주말농장도 함께 가고요. 남편들이 퇴근해 들어오면 한국 여자들은 서둘러 자기 집으로 돌아갈 텐데 이주 여성들은 남편들과 어울려 같이 얘기하고 식사를 하지요. 한번은 호앙의 여동생이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면서 컨립과 사랑 식구들이 총동원돼 배웅하러 나가는 걸 보고 무척 놀랐어요. 그 모습이 낯설고 불편하니 아마도 내가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모양이라고 생각했지요."

마지막 촬영은 폭염이 극성을 부리던 지난 7월 26일 있었다. "호앙이 이사 가는 날이었죠. 좋은 촬영 소재라 아침 일찍 그녀의 집에 갔더니 이삿짐이 벌써 2톤 트럭에 실려 있더라고요. 워낙 단출했죠. 그런데 호앙이 아파 보였어요. 온종일 이사 풍경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모든 게 엉클어진 겁니다. 호앙의 모습을 한장 찍고 바로 카메라를 접어 가방에 넣었어요. 대신 호앙이 쉴 수 있도록 아들 민찬이를 유모차에 태워 태평동 골목을 두세 시간 거닐었습니다. 촬영은 못 했지만 괜찮았어요. 우린 이미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전시장에는 호앙과 컨립, 사랑의 아이들도 와서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엄마'들은 자기 사진 앞에서 열심히 '셀카'를 찍으며 좋아라 했다. 호앙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수줍게 웃더니, "네, 괜찮아요" 한다. 이선민은 호앙과 컨립, 사랑을 성남중앙시장 한복판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생명력이 넘치잖아요. 강하고 발랄하고. 시대와 국경을 넘어 모성의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사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