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도 없이 그대와 헤어졌노라 그 흔한 작별 인사도 없이/누구를 사모하여 능소화는 붉게 타오르나 비에 젖어도 꺼질 줄을 모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인가 그 길을 헤매일 때 나는 그저 뜰만 거니네.'
손호연은 한국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최고의 단가(短歌)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단가란 31음절,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로 일본의 대표 문학 장르. 1923년 태어나 열일곱 살 때부터 단가를 쓴 손호연은 2003년 생을 마칠 때까지 60여년 동안 단가 2000여편을 남겼다. 일본 아오모리에 시비(詩碑)가 섰고, 일왕이 자작시를 발표하는 '궁중 신년 단가회'에 초청됐다. 2005년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절실한 소원이 나에게 하나 있지,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 하고 이어지는 손호연의 단가를 읊었다.
맏딸 이승신씨는 손호연을 "한류(韓流)의 원조"라고 했다. "어머니의 시를 일본 사람들이 감격하며 좋아하잖아요. 일본어로 썼지만 단가엔 한국의 역사와 정취가 담겨 있습니다. 어머니 소원대로 단가의 원조가 한국이라는 걸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이씨는 2002년 처음으로 손호연 시인의 일본어 단가를 한국어로 번역해 책을 냈다. 2008년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모아 '러브레터'라는 책을 냈다. 2004년부터는 매년 추모 행사를 연다. 지난달 손 시인이 평생 살았던 서울 필운동 자택에서 열린 10주기 행사에는 단가 연구의 대가인 나카니시 스스무 일본 교토예술대 전 총장,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씨, 벳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 다니엘 올리비에 프랑스 문화원장 등이 참석했다. 손호연 시인의 대표작 101편을 골라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한 '손호연 가집' 헌정식도 가졌다.
손호연의 비극은 일본어로 일본 시를 짓는다는 데 있었다. "우리 고유의 시조에 관심을 가져라" "한글이 있지 않은가"라는 비판을 들었다. "어머니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그러다 1979년 단가 연구의 대가인 나카니시 스스무를 만났는데 '단가는 1400년 전 백제에서 온 사람들이 향가를 가르쳐 준 게 뿌리'라고 하셨다는군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유일한 민족시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단가에 매진하셨죠."
손호연의 단가에는 그녀의 인생뿐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가 모두 담겨 있다. 나라 뺏긴 슬픔과 관련해 '나라 잃은 사람만이 알 수 있지 타국 사람은 알 길이 없네/ 바닷바람에 만국기 나부끼는데 조국의 깃발은 무슨 한으로 우는가'라는 단가를 쓰기도 했다. 손 시인이 1999년 일본헌정회관에서 한 특강에서 "조국을 잃었던 날들의 경험과 독립, 분단, 동족과 치른 전쟁, 북으로 납치된 아버지, 피란 생활 3년 등 수많은 체험이 내 단가의 소재가 됐다"고 했다. 이씨는 "어머니는 필운동 한옥에서 늘 한복을 차려입고 우리 정서를 담은 단가를 썼다"며 "1998년 일본 왕이 주재하고 NHK가 생중계했던 단가 낭송회에 초대받았을 때도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승신씨는 2011년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뒤부터 어머니처럼 단가 형식의 짧은 한국어 시를 쓰고 있다. 일본 팬들에게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대지진의 아픔을 단가로 쓰셨을 것"이라고 하자 일본인들이 "그럼 이 시인이 써보라"고 권유해서다. '그대의 마음 있어 꽃은 피고'가 그 시집이다. 이씨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영원한 이웃인 한국이 아직도 일본 침략으로 인한 수모의 기억을 갖고 있는데, (아베가) 정치적 인기를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옳지 않다. 많은 일본 지식인도 아베의 행동을 비판한다"고 했다.
이씨는 곧 손호연 전집을 내고 '손호연 동아시아 평화상'도 제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