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IJ가 중국 고위층이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들어 탈세한 정황을 포착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 중국 최고 권력자들의 일가족과 친인척들이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수백개의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만들어 탈세를 도모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22일 '인민의 조세피난 공화국'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중국과 홍콩의 최고위층 및 부호 2만 1321명이 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폭로했다.

이 중에는 시 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를 비롯해 덩 전 주석의 사위 우젠창(吳建常), 원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과 사위인 류춘향,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사촌인 후이스, 전 총리인 리펑(李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전 인민은행장의 사위인 처펑, 왕쩐 전부주석의 아들 왕쥔과 왕즈 등 핵심 권력의 가족들도 포함돼 있다.

22일 ICIJ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 주석의 매형인 덩자구이는 처남인 시 주석이 중국 최고 권력기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2008년 3월,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원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은 아버지의 재임 기간인 2006년 버진아일랜드에 '트렌드 골드 컨설팅'이란 회사를 세웠다가 2008년 폐업한 흔적도 발견됐다. 원윈쑹이 유일한 직원이자 지분 소유자였다는 점에서 이 회사는 페이퍼컴퍼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 전 총리의 외동딸 원루춘(溫如春)도 불명예스런 의혹에 휩싸였다. 페이퍼컴퍼니 설립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국 금융회사 JP모건체이스에 자문해 주는 명목으로 180만 달러를 받았다는 정황이 ICIJ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원 전 총리는 이미 지난 2012년 10월 뉴욕타임스 폭로로 한 차례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원 전 총리의 어머니와 아들, 딸, 동생 등의 명의로 등록된 자산이 최소 27억 달러(약 3조 원)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ICIJ에 따르면 크레디트스위스, UBS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와 PwC 등 글로벌 회계법인이 중국 고위층에게 페이퍼컴퍼니 설립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 이후 중국에서 국외로 유출된 금액은 최소 1조 달러(약 1070조원)에서 4조 달러(약 4280조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국 고위층의 재산 공개 규정이 없어 국민들은 이들이 탈세나 정경유착 등 비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무지한 상태다.

시 주석은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회의에서 "한 팔을 잘라주는 장수의 마음으로 부패를 도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연일 부패 추방을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을 포함한 고위층 가족·친인척의 역외 탈세는 중국 정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