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혐의로 지난 2011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된 변모(63)씨는 이듬해 5월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될 수 있게 힘써 달라"며 A(59)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 변호사는 30년 넘는 판사 경력에다가 고등법원장에서 퇴임한 지 1년이 안 된 몸값 높은 소위 '전관(前官)' 변호사였다. 변씨는 2012년 10월 보석 허가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당일 다른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자 "전관예우를 내세워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했으니 수임료 7500만원을 돌려달라"며 이 변호사가 속한 로펌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23일 패소 판결을 받았다.

변씨처럼 전관예우 시비로 소송까지 벌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당사자끼리 수임료 일부를 돌려주는 식으로 무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관예우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전관예우 방지법'까지 만들어졌지만, 뿌리 깊은 전관예우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는 수임료로 1억원을 받았다가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자, 당사자를 불러 '미안하다'며 수임료 절반을 돌려줬다고 한다. 지난 2012년에는 의뢰인이 사건 결과에 불만을 품고 부장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모(51) 변호사는 "재력가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사건에서 전관을 과시하며 5억원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전관에 기대했다가 제대로 안 되면 가족들이 사무실로 찾아와 '도둑놈, 돈 내놓으라'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에 따르면 전관 변호사 비용은 고법 부장판사 출신이면 최소 5000만원, 검찰총장·대법관은 최소 1억원이라는 게 정설(定說)이다. '전화 변론' '도장 변론'이라는 용어도 있다. 고위직 출신이 현직 후배에게 전화를 넣는다든지, 대법원 사건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을 찍어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값만 3000만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검사 출신 중엔 검사장급 이상이, 법관 중에서는 고법부장급 이상이 소위 '대어(大魚)'로 꼽힌다.

전관예우가 없어지지 않는 건 구속 등 궁지에 몰린 피의자들이 비싼 수임료를 내면서까지 능력 있는 전관을 찾고, 전관 변호사들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높은 수임료를 챙기기 때문이다. 로펌들이 고위 법관·검사 인사철이면 수천만원~억대의 월봉(月俸)을 주고 앞다퉈 전관들을 '모셔가는' 이유도 이런 관행과 무관치 않다.

전관예우 방지법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고위 법관·검사들이 로펌에 들어가면 전관예우 방지법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변협 간부 출신 변호사는 "전관들이 로펌에서 특정 사건 변호인에 이름도 올리지 않고, 법정에 나가지도 않은 채 뒤에서 조정하면서 전관예우 방지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은 SK·CJ·효성 등 대기업들이 오너의 구속을 피하기 위해 전관이 모여 있는 대형 로펌에 수십억~100억원 이상의 수임료를 쏟아붓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현직 판사나 검사들은 "전관예우는 옛말"이라고 부정한다. 불과 수개월 전 함께 근무했던 선배 판검사가 변호사로 선임되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사건만큼은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주장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전관을 기대하고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사건은 후배 검사들 보기 창피해 맡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