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톰슨의 '하비비'.

“2014년 한국은 역사상 가장 많은 독자가 만화를 일상적으로 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웹툰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한국만화 역사상 가장 진지한 만화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달 20일 '문예만화'를 기치로 내걸고 창간한 만화전문잡지 '이미지 앤 노블'의 발문(跋文)이다. 웹툰이 주는 경쾌한 웃음과 즉각적인 반응에 맞서 인문학적 지식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중심에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이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그래픽노블의 최근 3개월 출간 권수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었다. 2008년부터 그래픽노블을 출간해온 시공사의 지난해 매출액도 첫해 대비 4배 증가했다. 시공사는 올해만 20여 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미생' '이끼'의 웹툰 작가 윤태호는 그림풍이 그래픽노블과 유사해 올해 런던도서전의 초청을 받았다.

그래픽 노블은 기존 '코믹스'에선 보기 힘든 깊이를 추구한다. 지난해 7월 발간된 '하비비'의 경우 코란과 성경, 노예, 산업화 등의 주제를 다루고 중동의 역사와 여성차별 실태 등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700쪽짜리 만화가 완성까지 7년이 걸릴 만큼 창작기간도 길다.

예술적 실험성도 두드러진다. 대구중앙고 박재찬(46) 교장은 "작년 6월쯤 친구가 추천해 호주 작가 숀 탠의 '도착'을 봤는데, 대사 없이 컷으로만 전개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도서관에 그래픽 노블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그래픽노블은 "만화가 뭐 이렇게까지 거창하냐"는 저항감 때문에 초기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학과 박인하 교수는 "웹툰이 만화인구를 1000만명까지 확장시킨 것이 만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다양한 종류의 만화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고 그래픽노블 인기 상승의 배경을 분석했다. 예술서적 전문출판사 미메시스의 김미정 에디터도 "만화 스타일이 다양해진 것도 그래픽노블의 작가주의적 필체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고 말했다.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잇달아 히트한 것도 도움이 됐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리메이크한 '설국열차' 원작은 영화 개봉 후 2만1000부가 팔려나갔다. 지난 6일 개봉한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300'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등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개봉 예정작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래픽노블(graphic novel) 직역하면 ‘그림 소설’. 문학작품처럼 깊이 있고 예술성 넘치는 작가주의적 만화를 통칭한다. ‘문예만화’로도 불린다. 1978년 미국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다. 미국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1992년 만화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