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천마(天馬)를 보는 순간 황홀경에 빠졌다. 목 뒤쪽으로 휘날리는 갈기가 날카롭게 번쩍거렸고, 한껏 추켜올린 꼬리에선 영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3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전시실. 대나무판 위에 장식된 금동 천마도가 1500년 만에 공개된 순간이었다.〈본지 4일자 A13면 보도〉
◇녹을 벗겨 내니 천마가 생생
"아, 이거 천마네! 눈이랑 귀도 있고, 갈기까지 선명하게 그렸어요!"
지난해 4월 국립경주박물관 보존처리실. 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죽제(竹製)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를 보존 처리하던 직원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엉겨 붙은 유기질과 청동 녹을 벗겨 내고 약품 처리를 했더니 금동판에 투조(透彫·뚫어서 만듦)한 말의 머리가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1970년대 열악한 기술로는 복원 불가능했던 것을 41년이 지나 21세기 첨단 보존 처리 기술로 이뤄낸 성과"라고 했다.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발굴 당시는 물론 보존 처리 직전까지도 천마 문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왜 출토 41년 만에 확인됐나
죽제 말다래는 발굴 당시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았다. 천마총 발굴단 책임조사원이었던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관리국에는 수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발굴 직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지고 갔다. 죽제 말다래 한 쌍은 합판으로 짠 나무 상자에, 백화수피(白樺樹皮·자작나무 껍질)제 한 쌍은 아크릴 상자 두 개에 각각 넣어 수장고에 보관했다"고 했다. 초기엔 습도 유지를 위해 상자 안에 물통을 넣은 게 전부. 최근까지는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수장고에서 보관해 왔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보존 처리 후 3D 스캔, 적외선 및 X선 촬영 등을 통해 천마도 3점의 실측도를 제작했다. 죽제 말다래 제작 기법도 알 수 있었다. 금동판에 비늘 무늬, 마름모 무늬 등을 타출(打出·동판에 문양을 대고 두드려 새김) 기법으로 장식한 신라 장인의 고난도 세공 기술까지 밝혀냈다.
◇뒤늦게 밝혀지는 발굴 비화
백화수피제 말다래 한 쌍 중 아래에 깔려 있던 한 점이 상태가 더 좋았던 이유는 뭘까. 지건길 전 관장은 "죽제 말다래 1점 밑에 백화수피제 한 쌍이 거의 붙은 상태로 출토됐다. 죽제가 위에서 나왔기 때문에 당시엔 밑에 그림이 있는 줄 모르고 약품 처리해 떼어내다가 윗그림에 얼룩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열악했지만 나름대로 '보존 처리'(약품)라는 걸 처음 적용한 발굴이었다는 것.
자작나무 껍질 두 점의 그림이 겹쳐질 듯 흡사한 것도 흥미롭다. 장용준 학예연구관은 "말다래라면 두 장의 말 머리 방향이 달라야 하는데, 같은 방향인 것으로 보아 부장용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