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년 역사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8년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시대로 복귀했다. 에르메스 지분의 4분의 1을 갖고 있는 경쟁사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와의 역학 구도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지난달 단독 대표를 맡은 창업가 6대손 악셀 뒤마(43)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뒤마 CEO는 2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적’과 동침 중인 지분 구도에 불편함을 드러내며 “에르메스의 지분 독립을 위해 맞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예고된 가문의 귀환
뒤마 CEO는 에르메스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의 6대손이자, 1978년 CEO를 맡아 2010년 작고할 때까지 대표를 지낸 장 루이 뒤마의 외조카.
그의 전임자 파트릭 토마(66)는 전문경영인으로 2006년 CEO로 발탁돼 회사를 이끌었다. 에르메스 역사에서 집안 밖의 사람이 회사 대표를 맡은 경우로는 토마 전 CEO가 유일했다.
토마 전 CEO는 이미 2012년 자신의 후임으로 뒤마 당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내정했다. 뒤마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공동대표로 일을 해왔다.
뒤마가 에르메스 경영진에 합류한 것은 ‘안방’을 넘보는 LVMH로부터 가업을 지키기 위해서다. 뒤마 외에도 40여명의 창업주 6대손 10여명이 회사에 합류했다. 이들은 요직을 차지하며 굳건한 가문 경영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뒤마 CEO의 사촌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예술담당 임원으로 제품 디자인을 총괄한다. 특히 뒤마 대표의 사촌인 줄리 게를랑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을 지주회사를 세워 대표를 맡고 있다. 에르메스 지분 73.4%를 분산 소유하고 있는 상속인 모임이 발판이다.
◆ 지분 독립의 의지
뒤마 대표의 취임은 가문 경영 체제로의 복귀라는 의미를 넘어, 경쟁사의 적대적 인수 위험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LVMH는 2010년부터 에르메스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지금은 에르메스 가문의 지분(73.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23%)을 갖고 있다. 에르메스로서는 LVMH의 보유 지분이 눈엣가시다.
에르메스는 그동안 LVMH의 지분 인수 과정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내는 등 지분 방어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법원이 LVMH에 800만유로의 벌금만 물렸을 뿐, LVMH의 지분 변화는 없었다.
토마 전 CEO도 공식 자리에서 “LVMH가 가진 에르메스 지분을 낮추도록 만들 것”이란 공언을 수차례 해왔지만 LVMH의 지분을 줄이지 못했다.
업계는 전문경영인보다 오너가에서 경영권을 맡으면 지분 싸움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 가문의 '흑기사'에 쏠린 눈
뒤마 리더십에 기대를 거는 이들은 그의 탄탄한 학력과 해외 금융사에서 쌓은 경력에 주목한다. 14세 때부터 회사 인턴으로 일한 뒤마는 프랑스 명문 대학인 파리정치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도 마쳤다.
그는 BNP파리바은행의 전신인 파리바은행 베이징과 뉴욕 지사에서 2년간 근무하다 1993년 에르메스에 합류했다. 이후 보석사업부와 가죽사업부에서 각각 2년씩 대표직을 맡았고 2011년 5월부터는 COO를 지냈다.
WSJ는 세계 경제 침체로 명품 시장도 불황을 맞았지만, 에르메스는 최근 10년새 매출이 3배나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매출도 37억500만유로로, 전년(34억8000만유로)보다 10% 가량 늘었다. 영업익도 2012년 7억4000만유로에서 지난해 7억9000만유로로 7% 가까이 증가했다.
뒤마 CEO는 “가문이 만족하고 내가 회사 경영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기꺼이 에르메스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