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문학 세대의 시(詩)가 봄을 맞아 활짝 피었다. 2000년 이후 등단한 시인들이 잇달아 신작 시집을 낸 가운데 젊은 시인들을 이론적으로 풀이해 온 평론가도 비평집을 출간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과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김경주 시인(38)은 5년 만에 신작 시집 '고래와 수증기'(문학과지성사)를 상재했다. 박인환 문학상을 받은 이준규 시인(44)은 시집 '네모'(문학과지성사)와 '반복'(문학동네) 두 권을 최근 한 달 간격으로 잇달아 냈다. 조재룡 교수(47)는 2000년대 시인들을 집중 분석한 평론집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내놓았다.

한국시는 1970년대 이후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로 크게 나뉘었다. 민중시를 표방한 현실주의 시인들은 전통 서정과 이야기 시(詩) 형식에 크게 기대 대중성을 확보했다. 자유주의 시인들은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문학의 자율성을 추구해 언어와 형식을 실험했지만 난해시(難解詩)란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등단한 시인들은 시단(詩壇)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위시(前衛詩)를 대거 들고 나왔다.

김경주는 2000년대 실험 정신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러나 신세대의 언어 감수성을 대변한 덕분에 고정 독자 2만명을 거느린다. 그는 10년 사이 시 낭독 운동을 하면서 시의 음악성에 눈을 뜬 결실을 담아 새 시집 '고래와 수증기'를 꾸몄다. '찬물에 종아리를 씻는 소리처럼 새 떼가 날아오른다'는 시 '새 떼를 쓸다'가 대표적이다. 시인은 '세 떼의 종아리에 능선이 걸려 있다/ 세 떼의 종아리에 찔레꽃이 피어있다'며 반복적으로 운율을 맞춘다. 심지어 '새 떼가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라고 '새 떼'를 되풀이한다. 그러더니 시인은 '나는 떨어진 새 떼를 쓸었다'고 마무리한다. 날아가는 '새 떼'를 노래한 시인이 날아가 버린 '새 떼'의 흔적이 된 것이다. '새 떼'라는 낱말의 반복이 사라져 버린 새 떼를 시인의 몸에 새기면서 노래로 거듭난 셈이다. 김경주는 이번 시집에서 구름, 물방울, 수증기, 입김 등등 유동(流動)하면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이미지들을 주로 노래했다.

이준규 시인은 이미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언어와 이미지, 리듬의 반복을 실험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신작 시집에서도 반복의 시학(詩學)을 집요하게 되풀이하면서 독특한 멜랑콜리의 미학을 빚어낸다. '겨울이다. 다시 겨울이다. 나는 겨울의 우울 속에 겨울의 그림자로 있다. 나는 있지 않았다. 나는 있으려고 했으나 있지 않았다…'(시 '우울')처럼 횡설수설하지만 일정한 반복의 규칙이 있는 시가 대부분이다. 부조리(不條理) 연극에서 외로운 인물의 독백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시는 반복을 통해 이미지를 퍼뜨리면서 동시에 주제의 관념을 반복해 압축하기도 한다. 시인의 언어는 반복으로 활기를 띠지만 어조(語調)가 우울해 복잡한 느낌을 낳는다. 기존의 언어 사용으론 포착할 수 없는 복합 정서를 새로운 언어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셈이다.

조재룡 교수는 평론집 '시는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2000년대 시는 난해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19세기 프랑스에선 도시 문명이 발달하면서 언어가 바뀌고, 시도 전통시에 비해 난해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옮아갔다. 2000년대 한국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젊은 시인들도 전통 서정과 이념을 벗어나 지금껏 보지 못한 시를 추구하다 보니 처음엔 난해할 수밖에 없다. 조 교수는 "2000년대 시인들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시로 다루는 시의 자의식(自意識)이 과거보다 강하다"면서 "폐허의 묵시록(默示錄) 이미지로 현실을 비판하거나, 리듬과 낱말의 반복으로 시를 짜내는 특징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