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고 두 시간여 시간이 있었는데도 왜 그렇게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이 많은지 의문이다. 침몰이 시작된 오전 8시 55분에서 한 시간이 훨씬 지난 10시 15분에야 "바다로 뛰어내리는 상황에 대비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있었을 뿐, 이 말을 신뢰한 승객 대부분이 탈출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은 실종자 대부분이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순진하게 믿고 그대로 따랐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제 겨우 열일곱 살 된 아이들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교가 생활의 전부고, 그 생활의 중심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진 선생님이 "대기하라"는 선장의 지시를 따르라고 했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쉽게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해난 전문가일 수도 없고, 이번 일이 교사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가장 큰 책임은 얼토당토않은 지시를 내린 선장에게 있을 것이다. 배 안의 선장은 왕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고 한다. 배 안의 안전을 책임지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니 선장의 대기하라는 지시를 선생님들도 따를 수밖에 없고, 그 선생님들의 말을 따른 학생들은 아직도 탁한 바닷물 속에 갇혀 있다.
이 사고 이후 수학여행 폐지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내 아이의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먼 곳으로 여행갈 기회가 흔치 않던 옛날에는 수학여행이 의미 있는 전통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몇 백 명이나 되는 학생을 통솔하기엔 부족한 교사 인력과 사회에 팽배한 안전 불감증을 고려했을 때 수학여행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세월호 사고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권위에 대한 순종이 요구되는 문화다. 요즘에야 원치 않으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에 불참하겠다고 하면 학교 측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강제로 가게 하기도 했다. 개인 활동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문화가 너무 단체만 강조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선내 승무원들이 선장의 권위에 더 일찍 의문을 제기했더라면, 학생들이 단체에 따라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갑판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