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톳길을 깔 때 반대가 무지 많았어요. 술장사하는 사람에게 이득 될 게 뭐냐는 거죠. '차라리 회사 홍보라도 되게 그 돈으로 공짜 술을 뿌리라'는 말도 들었어요."
조웅래(55) 맥키스 회장이 자서전을 썼다. 회사 그만두고 자기 사업에 뛰어든 이유, 삐삐와 전화기를 활용한 음악 인사말·메시지·벨소리 서비스로 대박 친 '700-5425' 탄생 비화, 별안간 주류(酒類)업계로 뛰어든 사연 등이 담겼다. 이런 이야기들 가운데 책 첫머리를 장식한 것은 '대전 계족산에 깐 14.5㎞ 황톳길'이다.
"원래 걷고 뛰는 걸 좋아해요. 마라톤도 47번 완주했고요." 2006년 봄 고교 동창들이 대전에 놀러 왔을 때도 산행(山行)을 제의했다. 계족산을 걷던 중 한 여자 동창이 주저앉았다. 하이힐이 문제였다. "난데없이 가자고 한 저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죠." 그는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산을 넘었다. "맨발로 걸어보니 발과 몸은 힘든데, 머리는 상쾌해지는 거예요." 내친김에 그달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양말만 신고 뛰었다. "그때 확신했어요. 맨발이 심신을 맑게 한다는 걸."
하지만 주변 어디에도 맨발로 걸을 만한 곳이 없었다. 즐겨 찾던 계족산에 흙길을 만들기로 했다. 1년 공사에 6억원 들었다. "자기 돈 써서 산에 황토를 뿌리다니…. 누가 봐도 허튼짓이죠. 하지만 머리는 가슴을 못 이긴다고, 열정으로 설득하니 결국 모두 이해해 주더군요."
계족산 황톳길이 완성되자 매주 수만명이 찾아와 맨발을 즐겼다. "저도 신났어요. 그저 걷는 것 이상의 즐거움도 드리고 싶어졌죠." 그는 클래식 연주자 9명으로 '맥키스 오페라단'을 만들고 매주 토요일 계족산 중턱에서 공연을 열었다. 매년 5월 둘째 주에는 '맨발 축제'도 연다.
올해 5월에는 클래식 공연도 축제도 열지 않았다. 대신 맥키스 오페라단이 대전·충남의 중·고교 20곳을 돌며 '힐링 콘서트'를 펼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과 충격에 빠진 학생들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제가 맨발의 즐거움을 느꼈을 때, 함께 나누려고 황톳길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큰 비극이 벌어졌으니, 함께 고통을 위로하고 극복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