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 모양은 옆으로 생겼는데도 한자인 '눈 목(目)'자는 왜 세웠으며, 글 또한 알파벳과 달리 한자는 내리썼을까. 우리는 여기서 서양의 가로 문화와 동양의 세로 문화를 엿보게 된다. 대표적인 보기가 '플래카드(placard)'와 '현수막(懸垂幕)'으로, 여기서 서양의 평등 정신과 동양의 공경 정신을 읽을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이름들이 언론과 언어생활에서 혼란스럽다. 한자어를 보면 '뜻밖의 재앙으로 죽음'을 횡사(橫死)라 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을 횡행(橫行)이라 했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사회에서는 질서를 위해 수평적인 횡적(橫的)인 관계보다 수직적인 상하 관계, 곧 종적(縱的)인 관계를 중시했다. 그래서 '횡(橫)'은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체제를 어지럽게 한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눈 목'자를 세워 쓴 연유며, 가로글씨의 '플래카드'와 달리 세로글씨의 '현수막'이 생긴 배경이라 하겠다.

국어사전들에서는 이 두 말을 달리 풀이하였는데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플래카드'를 '현수막'으로 순화하자고 했다. 오늘의 어지러운 현실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또 '①극장 따위에 드리운 막 ②선전문·구호문 따위를 적어 드리운 막'이라 했던 '현수막'의 풀이 ②를 '웹 표준사전'에서 '선전문·구호문 따위를 적어 걸어 놓은 막'으로 개정했다. '현수막'의 현(懸)은 '상을 걸다'란 현상(懸賞)의 '현'과 같이 '걸다, 매달다'란 뜻이요, 수(垂)는 '똑바로 드리우다'란 수직(垂直)의 '수'처럼 '아래로 드리우다'란 뜻이다. 미국의 금문교처럼 '쇠밧줄을 매달아 세운 다리'가 현수교(懸垂橋)다. 옆으로 걸어 놓은 막을 '현수막'이라 하게 되면 이러한 말들의 의미 체계가 흔들리게 된다. '플래카드'와 '현수막'은 의미 분화를 위해서도 구분해 써야 할 말이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는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몇몇 신문에서 '플래카드'를 '펼침막'으로 쓰고 있는데 순 우리말로 고친다면 '현수막'은 '드림막'으로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