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효종 때 류근은 여섯 살에 환관이 돼 태자 시중을 들었다. 1505년 효종이 죽고 태자가 황위에 오르자 류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다. 승진하려는 사람은 그를 한 번 만나는 데 은(銀) 1000량을 접견비로 내야 했다. 세간에선 류를 '서 있는 황제(立地皇帝)'로, 황제 무종(武宗)을 '앉아 있는 황제(坐皇帝)'로 불렀다. 류가 처형될 때 재산이 금 330t, 은 8050t에 이르렀다. 명 태조가 한 해 거둔 재정수입 은(銀) 200t의 마흔 배였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몇 년 전 역사 속 10대 부자를 발표했다. 류근이 1위였고 청 건륭제 때 탐관오리 화신이 뒤를 이었다. 두 누이 경령·미령을 각기 쑨원과 장제스에게 시집보낸 금융가 송자문, 청대에 아편 밀수로 떼돈을 번 광둥 무역상 오병감, 한 무제 때 구리 광산을 개발한 등통, 진시황을 세운 전국시대 상인 여불위도 포함됐다. 공통점은 권력을 업은 축재였다.

▶사회주의 정권 출범 후 부자는 사라졌지만 룽이런(1916~2005)은 예외였다. 아버지 룽더셩은 밀가루와 옷감을 생산해 큰 부를 쌓았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기업인들이 홍콩·대만으로 떠났지만 그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가느냐"며 남았다. 공산당은 룽씨 집안을 우대하고 재산을 민관 합영기관으로 전환해 계속 운영하게 했다. 룽이런은 '붉은(紅色) 자본가' 호칭을 받고 국가부주석까지 올랐다.

▶뼛속까지 장사꾼 기질 가득한 중국인에게 '개혁·개방'으로 둑이 트이자 거부(巨富)가 속출했다. 지난해 부자 1위 부동산 재벌 왕젠린의 재산은 24조원으로 이건희 회장의 두 배다. 2위 와하하그룹 회장 재산도 20조원에 달한다. 돈을 제멋대로 쓰는 졸부도 많다. 금융 재벌 류이첸은 올 초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받은 명대 국보급 찻잔으로 차를 마셨다가 혼쭐이 났다.

▶찻잔은 세계에 열일곱 개밖에 안 남은 유물이라고 한다. 그가 차를 마시는 사진이 인터넷에 뜨자 네티즌은 "허영심을 채우려고 보물을 그렇게 다뤄도 되느냐"고 비난했다. 중국 벼락부자 중엔 고급 스포츠카로 사고를 내고, 외국에서 보석을 싹쓸이하거나 고서화·도자기·보이차 수집에 돈을 펑펑 쓰는 사람도 있다. 한편으론 워런 버핏처럼 '부자의 도(道)'를 찾는 기업인도 늘고 있다. 알리바바 회장 마윈은 환경오염 예방에 3조원 공익 신탁을 했다. 헝다(恒大) 회장 쉬자인은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700억원을 내놓았다. 그래도 중국식 자본주의가 건전해지려면 세월이 더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