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딜러를 하는 양모(25·서울 강서구)씨는 지난 13일 걸려온 전화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전화를 한 사람은 2년 전 군대 후임병이었던 김모(24)씨의 아버지였다.
김씨의 부친은 "당신이 병장 시절 내 아들을 때리고 가혹 행위를 한 것에 대해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양씨는 법률 사무소를 찾아 '처벌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어떻게 소송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다. 양씨는 "제대 후 고소당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때 후임을 때린 걸 정말 후회한다"고 했다.
선임병들에게 맞아 숨진 '윤모 일병 사건'의 충격파가 군대를 제대한 예비역들로 튀고 있다. 군 생활 중 당했던 가혹 행위를 전역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라도 고소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예비역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이런 가혹 행위 상담이 24건 접수됐다. 비공개로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아 그 수는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상담자 중에는 전역한 지 무려 20~30년 된 예비역이나 그 가족도 있다.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 사이버 법률상담소에는 "우리 아버지를 때린 그때 그 사람들, 처벌할 길은 없을까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1980년대 군 생활을 하다가 선임들의 쇠파이프 찜질에 허리를 다친 A씨의 아들이 올린 글이었다.
선임의 눈 밖에 나 군 생활 내내 제초 작업에 투입됐다가 피부암에 걸렸다는 배모(53)씨, 이등병 때부터 줄기차게 얻어맞았다는 조모(58)씨, 방첩 작전 도중 선임에게 맞아 한쪽 팔이 마비됐다고 주장하는 황모(71)씨 등도 "소송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 중·노년 예비역들은 민형사상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사 사건의 경우 단순 폭행은 시효가 3년, 집단 폭행이나 흉기를 이용한 경우는 시효가 7년이다.
군 가혹 행위 관련 사건 20여건을 맡았던 김민호 변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소송을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상담자들은 대신 시효가 없는 국가유공자 지정을 문의한다"고 했다.
국가보훈처에선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도 입증만 되면 군대에서의 가혹 행위를 인정, 대상자를 국가유공자 또는 보훈보상대상자로 지정해준다. 실제로 2009년 입대해 선임들에게 폭행을 당하다 조울증 증세로 전역한 B씨가 2년여 소송 끝에 승소해 지난 26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군 시절 가혹 행위에 대해 소송을 거는 예비역 장병들은 과거 군에서 얻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법원이라는 공식적 경로를 통해 사과받으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