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학당에서 원룸, 하숙, 식당 등 백화점을 운영하니 동네 주민 다 죽는다.'

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북아현문 앞에 이런 문구의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플래카드 앞에서는 학교 주변 임대업주 50여 명이 이화여대의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인근에 원룸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대책위 대표 조성보(72)씨는 "지금 이대 근처 하숙집·원룸들은 평균 방이 3~4개씩 비어 있다"며 "기숙사까지 만들어지면 경제적 타격이 어마어마해진다"고 말했다.

대학가 원룸·하숙집 주인들의 반발에 서울시의 대학생 기숙사 충원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6월 토지이용계획을 재정비해 각 대학 안에 기숙사 건축 부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지원책으로 2014년까지 1만2000명 학생이 추가로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내 54개 대학의 지방 출신 학생 비율이 30%(14만명)에 달하는 반면 기숙사 학생 수용률은 7%(3만명)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시는 계획 발표 후 이화여대를 포함해 시내 22개 대학교가 기숙사를 신축할 수 있도록 조정해줬다. 그중 아직 공사 중인 곳이 6곳, 착공도 하지 못한 학교가 6곳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2014년 목표 달성은 요원한 셈이다.

지난 18일 이화여대 후문에서 인근 원룸·하숙집 주인들이 이대 측의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대에 기숙사가 신축되면 동네 주민들이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나마 이화여대는 구청이 건축 허가를 승인해주면서 지난 7월 공사를 시작했지만 경희대는 주민과의 갈등으로 건축 허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 경희대는 2012년 6월 정부가 선정한 공공기숙사 건립 대상 학교로 선정됐다. 인근 집값이 비싸고 기숙사 수용률이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학 측이 1000명 규모의 기숙사 건립을 선포하자 대학가 집주인들이 "생계를 꾸리기 어렵게 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경희대 측은 지난 7월 동대문구청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지만 구청은 "주민과 합의를 끝내고 오라"며 반려했다. 경희대 학생회는 이에 반발해 지난 16일 공공기숙사 신축 허가를 요구하는 학생 3480명의 공동민원을 동대문구청에 접수시켰다.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도 지난 3월 전국적으로 6684억원을 투입, 1만8294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건립에 나섰지만 대학가 원룸·하숙집 주인들과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학가 임대업주들은 2012년 대학촌지역발전협의회를 결성, 기숙사 신축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협의회 측은 "대학가에 자취방을 운영하는 주민 대부분은 은행 융자가 있어 월세를 받지 못하면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학생들은 기숙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작년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대학생의 월평균 총소득은 79만6700원으로 이 중 40%(31만7700원)가 주거비로 지출되고 있다. 평균 전세 보증금은 6950만원, 평균 월세 보증금은 671만800원인 반면 사립대의 월평균 기숙사비는 34만원 수준이어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적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기숙사 건설을 시작할 때 임대업주들과의 갈등이 예상되는 학교가 많다"며 "학생 주거권과 주민 생존권을 잘 조율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