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듦새가 뛰어나지 않은 영화 '레드카펫'(감독 박범수)을 봐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배우 오정세(37)의 연기다. 오정세는 영화에서 철저히 조연이다. 출연분량 자체가 적고 당연히 대사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오정세가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관객을 포복절도 하게 하는 특별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정세는 리듬으로 승부한다. 리액션의 타이밍, 대사의 높낮이로 미소 짓게 한다. "짜증나." 이 한 마디로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오정세는 이게 가능한 배우다.

많은 배우가 관객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한다. 코미디 감각은 쉽게 기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정세의 코미디 연기를 보면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를 만나려고 했던 건 순전히 이 재능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정세를 사전에 연구하고 만나본 뒤 '재능'이라는 말을 거둬들였다.

연극판에 있던 그가 영화계에 데뷔한 건 2001년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을 통해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경찰1'이었다. 그는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름 없이 연기했다. '박 형사' '남 선생' '백사장 비서' '30대 남' '오 실장' 등이 그가 맡은 역할이었다. 장편영화, 단편영화, 드라마, 특별출연 등을 모두 합쳐 그가 출연한 작품이 13년 동안 70편이 넘는다. 50여 편에 넘는 작품을 하고 나서야 '남자사용설명서'(2013)로 주연을 맡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오래 할 자신은 있었어요. 좋은 배우가 될 자신은 애초에 없었어요. '오래하자.' 딱 그것 뿐이었어요." '남자사용설명서'에서의 연기로 호평 받은 그는 다시금 조연으로 돌아와 있다. 오정세는 '남자사용설명서' 이후 10여 편을 다시 조연으로 출연했다. '레드카펫'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맡은 '진환'이라는 인물은 철저히 양념이다. 그는 "배역의 크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즐기면서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게 즐긴다는 건 쫓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랑 비슷해요.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전 단 한번도 '주인공이 돼야지' '뭘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 게 성공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그냥 연기를 계속 하는 겁니다. 제게 어떤 배역을 연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에 감사하며 연기하는 게 제게는 즐긴다는 의미와 같아요. 쉬지 않고 연기하는 거죠."

오정세는 자신감은 없다고 했다. 오래할 자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배우 생활의 신념같은 것도 아니었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 '작년보다는 올해가 낫겠지'라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전부였다.

그는 "단역을 연기한다고 해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 역할이라도 잘 하고 싶었고 지난 연기보다 오늘 연기가 괜찮다고 느꼈을 때 작은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정세는 천천히 쌓아올린다. 그는 느리다. 하지만 단단하다. 벽돌 하나 하나를 오차 없이 맞춰 배열하고 이상적인 비율로 시멘트와 물을 섞어 벽돌 사이 사이에 바른다.

"제게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었으면 해요. 작품을 많이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닌데 작품을 많이 하면 그만큼 쌓이는 게 있다고 믿어요. 매번 챙겨가는 게 다르니까요."

'레드카펫'을 택한 이유도 그의 태도와 닿아 있다. 영화는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연출을 맡은 박범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닌, 꿈에 다가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정세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싶었다"고 짚었다. "영화가 담은 메시지도 그렇고, 제가 맡은 역할도 그렇고요. 자연스러운 게 가장 중요했어요. 제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즐거운 촬영이었습니다. 행복했어요."

오정세는 10년 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일관된 답변이 돌아왔다. "그대로이고 싶어요. 처음 시작할 때처럼, 어제처럼, 지금처럼 그대로 10년 후에도 오정세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