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만들려면 거쳐야 하는 작업이 있다. 디자인을 바탕으로 샘플을 만드는 일이다. 본을 바탕으로 사이즈와 체형을 반영해 마름질하는 이 과정을 업계에서는 '패턴 뜬다'고 말한다. 평면에 본을 그려 재단하면 평면패턴이고, 몸이나 마네킹에 천을 대고 하면 입체패턴이다. 디자이너가 구상한 모양을 실제로 구현하는 단계여서, 유명 디자이너 뒤에는 항상 유능한 패턴사가 있다.
서완석(59) 입체패턴연구소장은 양장(洋裝) 분야 대한민국 명장(2004년)이다. 1980년대 일본에서 배워와 소개한 '입체패턴 1세대'다. 30년 전 그가 서울 명동에 세운 열 평짜리 연구소에서 배출한 제자만 1000명이 넘는다. 상당수가 패션그룹이나 디자이너브랜드에 취업했다. 외국 명문 디자인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이 방학 때 그에게 배우러 오기도 한다. 평면으로 작업한 옷은 몸에 몇 번씩 대보고 수정하는 '가봉' 작업이 필요하고, 그래도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라인은 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젠 체형만 봐도 어떻게 실루엣을 살려낼지 금세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배 나온 사람의 옷은 마네킹에 패드를 붙여 만들어요."
그는 작년 패턴사로선 처음으로 세계패션그룹(FGI) 한국지부에서 주는 대상을 받았다. 이전까지 대부분 디자이너들 차지였다. 영화로 치면 주연 아닌 조연이 '연기 대상'을 받은 셈이다. 1997년 서완석이 서울패션위크에서 패턴사로는 처음 전시회를 열면서 패턴도 독립된 예술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서완석 개인으로선 입문 22년 만의 '사건'이다.
"디자이너가 아무리 아름답고 독창적인 옷을 생각해내도 그걸 실제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소용없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 양장점들이 생길 때 집안 좋고 학벌 갖춘 디자이너들과 달리, 재단사는 생계를 위한 기술자로 시작한 경우가 많았어요. 은근한 멸시가 있었죠."
서완석도 기술자 출신이다. 양장점이 호황이던 197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명동 양장점에 재단사로 취직했다. 도심 한 건물에 양장점이 네댓씩 생기던 시절이다. 월급도 비교적 넉넉히 받으며 잘 나갔다. 그렇게 7년이 지났을 때 유학을 결심했다. "선진국에선 입체 패턴이 대세라는 말만 믿고, 모은 돈 다 털어 일본으로 떠났죠. 하루에 12시간씩 주말 없이 작업실에 있었어요.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귀국한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입체패턴에 대한 인식도 희박했고, 대부분 작업시간이 덜 걸리는 평면 패턴 방식을 선호했다. 동료였던 재단사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직장을 알아보다가 지쳐 결국 스스로 차린 것이 지금의 입체패턴연구소다.
몇 안 되는 제자에게 가르치고 받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1990년대 들어 외국에서 다양한 디자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화려하면서도 몸의 선을 최대한 살려낸 옷들이 여성을 사로잡았죠. 하지만 기존의 평면패턴으로는 구현하기 힘들어요. '나만의 특별한 옷'을 입으려는 사람이 늘면서 입체패턴 시대가 온 거죠."
이전에 '취미 삼아' 만들어 둔 프랑스 패션디자이너 마들렌 비오네의 디자인을 재현한 옷 열 점을 내놓아 히트쳤다. "복잡한 모양의 주름을 하나의 천으로 만드는 고난도 기술이에요. 그런 옷을 만들 수 있는 이가 흔치 않았죠. 지금도 제가 그리고 오려낸 옷이 실제로 눈 앞에서 입는 사람 몸에 꼭 맞을 때 희열을 느껴요."
그는 굳은살이 박이거나 손 감각이 무뎌질까봐 집에서 못질도 하지 않는다. 그가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수십 년을 옷감과 씨름하니 천식을 달고 살아요. 이 정도 고된 거야 일도 아니죠. 소망이라면, 지금도 디자이너 뒤에서 이름 없이 일하는 많은 후배가 세상으로 나와 볕을 받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