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국희 특파원

코셔(Kosher)는 유대교의 전통 율법에 따라 식재료 선정부터 조리까지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거친 음식을 뜻한다. 예를 들면 가축을 도축할 때도 유대교 율법학자인 랍비의 입회하에 병들지 않은 동물을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인 뒤, 소금으로 사체를 문질러 피를 모두 제거한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이슬람교의 음식 규율인 할랄(Halal) 푸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러한 코셔는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각광받고 있다. 지난 16일 이스라엘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미국의 코셔 식품 시장이 125억달러(약 14조원) 규모로 연간 12%씩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대인 인구가 많은 미국 수퍼마켓의 식품 60% 이상이 코셔 인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견인하는 코셔 인증

하지만 정작 코셔의 본고장 이스라엘에서는 코셔가 높은 식료품 가격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유통되거나 수입되는 모든 식료품은 이스라엘 랍비청(Council of the Chief Rabbinate of Israel)의 코셔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달 초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랍비청이 정한 코셔 규정만 11페이지 168개 조항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종교적 교리에 따른 특이한 코셔 규정도 많아 돼지처럼 되새김을 하지 않거나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동물을 먹어선 안 되고, 해산물 중에서도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있는 어류만 먹을 수 있다.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섭취해선 안 되기 때문에 '코셔 맥도널드'에는 치즈버거가 없고, 고기를 먹은 유대인은 아메리카노는 마시지만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테는 마시지 않는다. 코셔가 아닌 음식이 담겼던 그릇은 반드시 끓는 물에 삶거나 불로 지져 소독한 뒤 사용한다.

미국 뉴욕의 한 대형 마트에서 ‘코셔’ 인증을 받은 연어 살코기가 판매되고 있다. ‘코셔’는 유대교의 전통 율법에 따라 조리·가공된 음식을 뜻하는데 미국·유럽 등지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 세계 코셔 식품 시장 규모는 2500억달러(약 278조원)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스라엘의 레스토랑이나 호텔, 식품 가공 공장에는 랍비청이 지정한 '코셔 감독관'이 상주하며 168개 규정을 준수하는지를 일일이 감시하고 있다. 달걀을 하나하나 깨보며 코셔에서 금지한 혈흔이 달걀 속에 남아 있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이스라엘 호텔 체인 이스로텔(Isrotel)의 리오르 아비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운영 중인 17개 호텔의 코셔 감독관 인건비로만 매년 300만셰켈(약 8억6000만원)이 빠져나간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랍비청에 매년 지급하는 코셔 인증 수수료도 20석 이하 소규모 식당은 517셰켈(약 15만원), 50석 이상은 1356셰켈(약 40만원), 객실이 250개 이상인 호텔은 1만2295셰켈(약 370만원) 등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러한 코셔 인증 비용은 고스란히 이스라엘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랍비청의 기득권 없애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코셔 식품의 시장 규모는 2500억달러(약 278조원)에 이른다. 코카콜라, 네슬레, 하겐다즈 같은 상당수 글로벌 식품 업체가 코셔 인증 마크를 제품에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북미와 유럽, 중동을 포함한 90여개국에 코셔 인증 업체가 수천곳 있을 뿐만 아니라 랍비 네트워크 또한 잘 갖추어져 있어 50만개 식료품목에 대한 코셔 인증을 현지에서 직접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코셔 인증을 받은 식품이라 할지라도 일단 이스라엘에 수입되는 모든 식품은 랍비청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 한 치즈 수입업자는 '예루살렘 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러한 이중 승인 과정을 거쳐 결국 치즈 가격이 35% 올랐다"고 말했다.

코셔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식품 업체들을 중심으로 높아지자 이스라엘 정부가 나섰다. 나프탈리 베넷 경제부 장관은 "코셔 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나설 것"이라면서 코셔 승인에 대한 랍비청의 독점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코셔 승인을 민간 경쟁에 맡겨 식료품 가격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랍비청의 기득권과 코셔 감독관의 일자리가 연계된 문제라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면서 코셔 인증을 받지 않는 식품 규모는 전체의 5% 미만이다. 코셔 인증을 받지 않고 코셔 인증서를 전시하는 것도 불법이라, 일각에서는 값비싼 코셔 인증서를 포기하는 대신 각자 양심에 따라 코셔 음식을 팔겠다고 선언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코셔(Kosher)

유대교의 전통 율법에 따라 식재료 선정부터 조리까지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거친 음식을 뜻한다. 예컨대 가축을 도축할 때도 소금으로 사체를 문질러 피를 모두 제거한 고기를 먹어야 하며,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돼지 같은 동물은 먹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