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4년 53.9%로 해마다 높아진다. 연령별로 보면 독특한 현상이 눈에 띈다.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독 낮은 ‘M자’ 그래프를 보인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발표한 바로는, 출산과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경단녀)은 197만7000명. 경단녀는 재취업에 평균 7년이 걸리고, 임금은 이전 직장보다 58만원 적게 받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워킹맘, 경단녀 문제가 자주 언급되지만 결혼한 여성 직장인의 고단한 삶, 제도와 대책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장 바뀔 리 없는 제도와 힘든 일상 중에 지금, 우리 워킹맘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1995년 워킹맘 두 사람이 2015년 워킹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이 편지에서 해답을 얻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임관한 게 1992년의 일이니, 23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변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부쩍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 바쁘다는 법조계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일을 해왔느냐고요.
후배 A의 얘기를 대신 전해 드리려 합니다. 좀 더 어린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누가 묻더군요. "여자 변호사에게는 사생활 챙기기도 어려운 로펌에 있는 것보다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업 사내 변호사 자리가 좋지 않을까요?" A가 대답했습니다. "제 동기, 친한 선후배 중에도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편한 사내변호사 자리로 옮긴 사람이 꽤 있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 어떻게 됐을까요? 로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늘 있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경력이 단절된 친구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 결정해야 합니다.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꾸리는 일만큼 일하는 재미를 느끼는 워킹맘이라면,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손이 많이 가고, 해야 할 일도 많은 젊은 시절에 모든 걸 다 하기 어려워 보일 때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며 직종을 바꾸거나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도 두 아이가 있습니다. 중학생, 초등학생입니다. 좀 늦게 낳았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나이가 되니 예전보다 손이 덜 가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더 그렇겠지요. 아이들보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일을 그만뒀더라면, 그 나이가 돼서 다시금 일이 하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하죠?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집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아예 그만두거나 경력을 포기한 엄마 중에는 아이에게 집착하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엄마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라며 "왜 성적이 안 나오느냐" "왜 내 뜻대로 하지 않느냐"면서 들들 볶습니다. 이보다는 일 때문에 바쁜 엄마 밑에서 '엄마가 하는 일이 뭐지?' 궁금해 하며 동경하는 아이가 훨씬 나을 겁니다.
법원에 있을 때 여자 동료의 사무실에 가보면 쉬는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이 동료가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 같았습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자기 계발에 쏟을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내 시간'이 없어지니까요.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지 워킹맘은 늘 고민해야 합니다.
2007년 광주지법 부장판사로 임명돼 한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엄마 간다'며 우는 아이들을 떼어놓느라 마음 아팠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오히려 더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냈던 시기인 것도 같습니다. 주중에 못해주는 것들을 주말에 해주려 노력했으니까요. 남편과 아이들의 관계도 친밀해졌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느라 아빠가 많이 고생했지만 그 덕택에 아빠와의 거리감이 좁혀진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희생해야 할 것이 생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다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멀리 보세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내가 했던 일을 이어나가고 싶을 때, 나의 정체성도 찾고 싶을 때,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어느 한순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내 시간'을 오롯이 포기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자신을 잃지는 마세요.
얼마 전 나는 내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연기자로 연극 무대에 올랐습니다. 전문 연기자도 아닌 우리가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연극 주제가 딱 우리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패션쇼'라는 이름의 연극에서 우리는 워킹맘으로 살아온 인생을 처음으로 털어놨습니다. 어떻게 하나 막막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그때 필요했던 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와 해답을 얻은 선배 언니의 조언이었습니다.
내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법조계에 여성은 매우 드문 존재였습니다. 300명 동기 중에 14명만이 여성이었으니까요. 그런데 2008년 사법연수원 교수로 돌아가 보니 40% 넘는 인원이 여성이더군요. 게다가 성적도 더 뛰어났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여학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면 그 여성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의아해지더군요. '알파걸'은 있는데 왜 '알파우먼'은 드물까 궁금해졌습니다.
이제 사회생활 연차가 쌓이니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은 성적만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표현하는 말로는 '마음 자세'가 잘돼 있어야 합니다. 알파걸의 약점입니다. 남성들의 문화에는 마음 자세를 기르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군대를 통해 규율을 익히고, 선배들을 통해 사회성을 익힙니다. 그러나 여성은 사회에서 필요한 마음 자세를 익힐 기회가 적습니다. 요즘 내가 '멘토링'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워킹맘의 일은 마치 시계추와 같아 '가정' 아니면 '일' 양쪽을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요. 그 추가 항상 가운데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무게추가 일로 기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일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권한도 많아지고, 책임감도 느끼게 될 겁니다. '제2의 인생' '새 출발'이라는 말을 쓰지만,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건 어렵지요. 하지만 해왔던 일을 확장해 하는 것은 많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직 워킹맘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나 제도 등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렵게 자신과 가족, 일을 모두 지키려는 워킹맘에게 힘을 주고 싶은 선배가 많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무게추를 잘 조절하며 더 멀리, 길게, 넓게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