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적이며 고급스러운 SF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매트릭스'가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관해 물었고, '인터스텔라'가 그 세계의 안팎을 잇는 휴머니티의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었다면, 21일 개봉한 영화 '엑스 마키나'(앨릭스 갈런드 감독)는 행성이 긴 타원 궤도를 돌아오듯 다시 사람을 향해 영화적 시선을 돌려 인간성과 여성성의 본질과 경계에 관해 묻는다. 고도로 추상적이며 우아한 이 영화는 108분 상영 시간 내내 관객의 감각과 사고를 쥐고 흔드는 비범한 스릴러적 재미까지 갖췄다. '프랑켄슈타인'과 '블레이드 러너'가 만나 히치콕을 대리모 삼아 낳은 아이 같은, 이 놀라운 영화가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현실 세계의 구글을 똑 닮은 인터넷 검색엔진 회사 블루북의 프로그래머 칼렙(돔놀 글리슨)은 사내 이벤트에 당첨돼 회사의 오너이자 천재 IT 엔지니어인 네이든 회장(오스카 아이작)의 집으로 초대받는다. 1주일간 머물며 칼렙이 할 일은 네이든이 창조한 매혹적인 여성형 인공지성(AI)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정말 인간성과 지성을 지녔는지 시험하는 것. 네이든은 "의식을 가진 로봇을 만들었으니 난 인간이 아닌 신(神)"이라 말하고, 시험을 거듭할수록 에이바에게 끌리는 칼렙은 자신의 존재를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의심 속으로 빠져든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며, 여자를 여자이게 하는가.' 감독은 단 세 명의 주요 인물과 두 곳의 장소에 이 질문과 답변의 단서들을 풀어놓는다. 초현대적 설치미술에 가까운 우아한 미장센으로 꾸며진 네이든 회장의 집은 창문도 없이 외부와 차단돼 폐소 공포마저 불러일으킨다. 반면 바로 그 밖엔 구름이 타고 흐르는 산등성이, 거대한 폭포와 녹색의 숲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AI 로봇 에이바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첫사랑 그녀'와 '능란한 요부' 사이를 줄타기하는 서늘한 매력으로 이 초현실적인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제목 '엑스 마키나'는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해 맥락 없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플롯 장치를 뜻하는 라틴어 연극 용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기계장치의 신)'에서 따왔다.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