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KCC 허재(50·사진) 감독은 최근 반백에 가까운 머리로 코트에 나섰다. 나락에 빠진 팀을 신경 쓰느라 새치가 머리를 뒤덮을 정도로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매특허이던 선수 쏘아보기와 호통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선수들이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도 먼 산 보듯 코트를 바라보고 헛웃음을 짓는 일이 많았다.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가 결국 자리를 내놨다. KCC는 9일 "허재 감독이 구단주와 단장을 만나 팀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올 시즌 11승34패를 기록 중인 KCC는 현재 리그 10개 팀 가운데 9위다. 남은 경기는 추승균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끈다.

허재 감독은 그간 성공한 스타 지도자로 이름 높았다. 현역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면서 한국 농구를 주름잡았던 그는 은퇴(2004년) 1년 만인 2005년 KCC의 감독을 맡았다. 그때부터 10시즌간 KCC를 지휘하면서 2번의 챔피언전 우승(2008~2009시즌·2010~2011시즌)을 일궜다.

올 시즌은 지난 2012년 6월 구단과 맺은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앞선 두 시즌간 10위(2012~2013시즌), 7위(2013~2014시즌)에 그쳤던 허 감독과 구단은 팀의 반등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안양 인삼공사에 팀의 에이스 강병현과 유망주 장민국을 내주고 포인트가드 김태술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센터 하승진, 국가대표 포인트가드 김태술, '제2의 허재'로 불렸던 2년 차 가드 김민구 등을 앞세워 정상 등극을 노리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허재 감독의 청사진은 펼쳐보기도 전에 어그러졌다. 김민구가 지난해 6월 음주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 고관절과 발목을 크게 다쳐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았다. 시즌 개막 후엔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고 영입한 김태술이 슈팅 슬럼프 등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승진은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면서 결장을 반복했다.

재도약에 실패한 허재 감독은 계약 만료 4개월을 앞두고 자진 사퇴를 택했다. 당분간 휴식에 전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허 감독이 "농구 선수로 활약 중인 두 아들이 프로에 입문할 때쯤 사령탑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며 감독으로 복귀를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