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던지면 “안녕하세요” 메아리쳤다. “동서라 남북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바람에 구름 가듯 떠도니 세월이 몇 해이던가.” 2006년 발표한 노래 ‘나팔꽃 인생’을 부르며 송해(88)가 무대에 섰다. “묻지 마라. 내 가는 길을.” 설날인 19일 오후 3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송해쇼! 영원한 유랑청춘’의 막이 올랐다.

이번 공연은 그의 구순(九旬)을 미리 기념하는 자리. "에누리라는 좋은 미풍양속이 있잖나. 아직 팔팔하지만 대충 구순 대접해줘도 무방하다"고 농을 한다. 데뷔 60주년이 됐다. 30년간 '전국노래자랑'을 하며 방방곡곡을 누볐다. "한참 떠돌다 뒤돌아보니 모든 게 꿈만 같습니다. 해서 공연 이름을 '영원한 유랑청춘'이라 붙여봤어요. 괜찮나요?"

공연 말미, 송해(가운데)와 원로 코미디언 원재로·함재욱, 가수 문연주·프레스리 등 출연진이 무대에 올랐다. 송해의 마지막 인사는 “건강하세요”였다.

초대 가수들이 흥을 돋우자 본격적인 쇼가 열렸다. 1960~70년대 영화관에서 노래하고 웃기던 이른바 ‘극장쇼’. 원로 코미디언 원재로·함재욱이 어수룩한 손님과 이발사 조수로 등장해 옥신각신하다 서로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싸운다. 이발사 송해가 등장해 상황을 정리한다. “친구끼리 ‘이 새끼 저 새끼’ 하면 돼? 이 새끼야?” 지짐머리 해달랬더니 달군 연탄집게를 들고 나오고, 면도 해달랬더니 도끼날을 가는 식의 슬랩스틱 코미디다. 별거 아닌 말장난에도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너그러운 폭소를 보낸다. “옛 친구들 생각이 나네요. 고(故) 서영춘·배삼룡·이기동…. 그분들 아마 ‘송해 너 참 오래 해먹는다’ 할 거예요. 근데 내가 오래 해먹는 거유? 댁들이 먼저 간 거지.” 설이지만 고향에 갈 수 없다. 그가 “내 고향이 황해도 재령”이라며 노래 ‘꿈에 본 내 고향’ 한 곡조를 뽑았다. 이내 “원한의 삼팔선 때문에 명절에 차례도 못 지내는 분들이 있다”며 ‘가거라 삼팔선’을 불렀다. 내내 눈을 꼭 감은 채였다. 무대에 의자를 놓고 토크 콘서트가 이어졌다. 그는 “설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세월이 너무 흘렀지만 조금만 더 살아계셔달라”며 울먹였다. 스물한 살 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외아들 얘기를 꺼낼 땐 목소리가 오래 떨렸다. “수술 열흘 만에 제 곁을 떠났구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더니 지금도 가슴을 파면 ‘아버지’ 부르며 튀어나올 것 같구려.” 객석에서 “형님 힘 내십쇼” 응원이 터져나왔다. 이날 송해는 오전부터 3시간 동안 리허설을 했다. 공연 시간만 2시간 20분. 오후 6시부터 또 저녁 공연이 기다렸다. 최근 싱글 앨범을 냈고, 4월엔 책도 낸다. 체력이 염려될 법하나 그는 기운찼다.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 지하철 타고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매일 3000~4000보(步) 걷습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 벌떡 일어나 다리 힘주고 걸어보세요. 쫙쫙 나갑니다.” 청춘의 비결은 익살인 모양. 2013년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선 최연소 인기상을 탄 장연우(7)양이 게스트로 나오자 송해가 반색한다. “오빠가 쇼 한다고 하니까 왔어?” “네. 공연 축하해요, 송해 오빠.” 손을 맞잡고 노래한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공연은 21일 부산을 거쳐 다음 달 1일 경남 창원으로 이어진다. 유랑은 계속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