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중심가에는 口자 형태로 지은 축구장 2개 면적의 회색 빌딩이 있다. 공산당 최고 권력 기관인 중앙위원회 당사로 쓰였던 이 건물은 1989년 민주 정권이 수립되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상징으로 변했다. 2000년까지 증권거래소, 이후엔 다국적 기업의 사무실이 모여 있는 파이낸셜 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고급 스포츠카인 페라리 매장과 그 옆 고급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 폴란드어뿐 아니라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 등 세계 각국 언어가 뒤섞여 들렸다.
폴란드 문화원의 아시아 담당인 에바 파슈코비치(35)씨는 유창한 한국어로 "부모님은 '코리아' 하면 북한을 생각하지만 우리 세대는 한국산 휴대전화와 자동차, K팝을 먼저 떠올린다"며 "옛날 폴란드는 꼭 북한 같았는데 지금은 한국처럼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G6로 도약하는 폴란드
1989년 동유럽 최초로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한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세를 보여왔다. 지난 20년간 유럽연합(EU) 평균의 2~3배에 이르는 성장을 했다.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2009년 EU가 마이너스 성장(-4.4%)을 할 때도 폴란드만 유일하게 2.6% 성장했다. 2008년 이후 유럽에서 계속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는 폴란드가 유일하다.
오펠, 폴크스바겐, 피아트 등 세계 유수 자동차 회사들은 폴란드에서 자동차를 연간 50만~80만대 생산하고 있다.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사들도 핵심 부품 생산을 폴란드 중소기업에 맡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 등 120여 한국 기업도 현재 이곳에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와 미국 국가경쟁력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세계 제조업 경쟁력 순위'에서 폴란드는 전 세계 14위, 유럽에선 독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와 같은 경제 발전으로 현재 폴란드는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G6로 분류된다.
◇철의 장막에서 동서 유럽의 관문으로
폴란드는 냉전 시대 동독과 함께 동서 유럽을 가르는 철의 장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서 유럽을 연결하는 관문 국가가 됐다. 폴란드는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발트해를 통해 스웨덴, 핀란드와도 연결된다. 독일의 무제한 고속도로 '아우토반'과 맞닿았다는 장점도 한껏 활용하고 있다. EU는 일찌감치 폴란드의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개발을 지원했다. 2007~2013년 사이 EU 기금 679억유로(약 84조5000억원)가 폴란드 인프라 구축과 경제협력 프로그램에 사용됐고, 2014~2020년에는 추가로 890억유로가 할당될 예정이다. 폐쇄에서 개방 체제로 나가면서 유럽의 투자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명품 매장과 고급 음식점이 즐비한 쇼핑 거리 노비 슈비아트(Nowy Swiat)는 쇼핑 인파로 가득했다. 서유럽 주요 도시 풍경을 보는 듯했다. 폴란드 인구는 3850만명(2013년 집계)으로, EU 28개 회원국 중 여섯째로 많다. 최문석 코트라 바르샤바 무역관장은 "내수 시장이 큰 데다 유로화 대신 자국 화폐(즈워티)를 사용하는 장점 때문에 유럽 경제 위기에도 잘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바르샤바 과학원에서 일하는 보이체흐 파슈코비치(63) 물리학 교수는 "과거 폴란드 공산당은 코페르니쿠스와 퀴리 부인의 후손들에게 농업 관련 사업에서만 자유를 허용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그러나 체제 전환으로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서 숨어있던 저력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지만,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다. 최저임금은 룩셈부르크의 20% 수준이다. 홍지인 주(駐)폴란드 한국 대사는 "1989년 이후 체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 독일과 과거사 화해를 한 과정 등은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