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十常侍). 황제의 눈을 가리고 국정을 농단해 한(漢)나라 멸망을 앞당긴 환관 10명을 말한다. 중국은 한나라뿐 아니라 당(唐)·명(明)나라 때도 환관들이 정치에 개입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명나라 환관들은 비밀 경찰 조직까지 휘어잡고 횡포를 일삼았다.
이처럼 역대 왕조를 뒤집었던 '환관 정치'의 폐해가 공산당이 통치하는 시대에는 '비서 부패'의 형태로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일보는 "최근 부패로 낙마한 차관급 이상 30여명 가운데 3분의 1이 유력 인사의 비서를 지냈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신문망도 4일 "지난해 부패로 체포된 관리 중 20여명이 비서장(비서실장) 출신"이라고 전했다.
'비서 부패'가 위험수위에 달하자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선 경고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사회과학원 부원장을 지낸 주자무(朱佳木) 정협 위원은 10일 "비서의 정치 개입은 부패하기 쉬운 토양을 만든다"며 "지도자를 예방하기 위해 그 비서에게 돈을 줘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가 11일 전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와 비서의 관계는 은밀하고 사적(私的)이기 때문에 부패를 적발하기도 쉽지가 않다"고 밝혔다. 중국 정가에서 '비서방(�書幇·비서 출신 인사)'은 막강하다. 주간지 남방주말은 "중국의 시(市)급 당서기 286명을 조사했더니 20% 이상이 비서 경력자였다"고 말했다.
과거 전제 권력의 측근이던 환관은 황제의 의중을 들먹이며 돈과 권력에 집착했다. 반면 현재 공산당 권력자의 비서는 돈·권력은 물론 여자까지 탐하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이던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부장은 후진타오 관련 뉴스를 점검한다며 CCTV를 드나들다가 여기자 펑줘(馮卓)를 정부(情婦)로 삼았다. 링지화의 고향 집에선 트럭 6대분의 재물이 쏟아졌다.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비서 출신인 지원린(冀文林) 전 하이난(海南)성 부성장은 낙마 이유에 간통이 포함됐다.
시진핑 지도부가 부패 척결에 나서면서 '비서방'을 조준하는 것은 환관의 부패로 나라가 망했던 역사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시 주석 자신이 겅뱌오(耿飇) 국방부장의 비서로 사회에 진출한 만큼 '비서 부패'의 위험성을 잘 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처럼 '관시(관계·연줄)'가 중요한 정치 구조에선 권력자의 비서가 환관처럼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인(人)의 장막'을 칠 가능성이 크다.
중공 개국공신인 천윈(陳雲)의 비서였던 주자무 위원은 "비서 문제는 결국 지도자의 책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