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 이건 무슨 말이지? 한 번 볼까."
28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초동 한 상가 건물에 위치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반석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교재를 보던 A(16)군이 단어 '횡재'에 스마트폰을 갖다대자 액정 위로 설명이 떴다. '호박 잡다. 노력도 없이 뜻밖에 돈을 얻거나 좋은 일이 생기다.' '호박 잡다'는 횡재하다의 북한 말이다.

A군이 사용한 것은 탈북 청소년에게 어려운 단어를 북한 말과 쉬운 우리말 설명으로 풀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글동무’다. 제일기획이 교육봉사법인 ‘드림터치포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최근 개발한 글동무는 남북 단어를 자동 변환해주는 일종의 디지털 사전이다. 앱 실행 후 바코드 찍듯이 모르는 단어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갖다대면 그 단어에 맞는 북한말과 뜻 풀이가 화면에 뜬다. 햄버거는 북한말 ‘고기겹빵’, 개구쟁이는 ‘발개돌이’, 거짓말은 ‘꽝포’, 소매치기는 ‘따기꾼’, 횡단보도는 ‘건늠길’ 등으로 번역된다.

28일 서울 서초동 반석학교에서 글동무 앱으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는 탈북 학생.

이날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반석학교의 탈북 학생 19명은 교실 내 둥글게 둘러앉아 글동무 사용법 시연을 지켜봤다. 이어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앱을 설치하고 모르는 단어에 카메라를 갖다댔다. B군은 “‘애마’라는 단어를 모르겠다”면서 글동무 단어 검색창을 클릭했다. ‘애마’를 치고 검색 버튼을 누르니 ‘자기가 즐겨 타며 사랑하는 말. 보통 자기가 즐겨 타는 차량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는 설명이 떴다. B군은 “카메라 자동 인식이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사전보다 설명이 쉽고 친절하다”면서 “앞으로 공부할 때 (글동무를) 유용하게 쓸 것 같다”고 했다.

작년 4월 기준 전국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 학생 숫자는 2466명에 이른다. 이들이 꼽는 가장 큰 불편함이 바로 ‘언어 고충’이다. 언어 문제로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자신감을 잃고 엇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학 편입 준비 중인 탈북 학생 선모(23)씨는 “북에서 어느 정도 학교를 다니다 와도 한자어와 외래어가 많은 남한 교과서를 보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친구한테 물어보기도 창피하고, 수업 내용을 못 알아들으면 소외감도 느낀다”고 했다. 반석학교 정유진 교사는 “탈북 학생도 이 정도는 알겠지 하는 우리 사회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남·북 언어 번역 앱 개발은 이런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 작년 9월 제일기획 직원이 탈북 학생과 함께 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대다수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직원의 아이디어는 탈북 학생과의 추가 면담, 전문가 상담 등을 통해 앱 개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글동무를 개발한 TF 소속 장종철 팀장은 “학생들의 언어 학습에 가장 기본이 되는 국어 교과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앱 개발팀은 국어 교과서에서 북한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추려 번역과 설명을 추가해나갔다. 특히 탈북자 출신 대학생들 힘이 컸다. 이들 12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직접 고교 국어 교과서를 정독하며 어려운 단어를 추려냈다. 2차 감수는 북한에서 교사 등을 지낸 자문위원 7명이 맡았다.

28일 오전 반석학교 탈북 학생이 글동무 앱에서 '썸'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다.

아이디어 회의 후 6개월만인 지난달 글동무가 탄생했다. 구글 플레이에서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이 앱에는 현재 3800 단어가 실려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갖다댔는데 앱에 없는 단어인 경우 ‘궁금해요’ 버튼만 클릭하면 운영자가 업데이트도 진행한다. 개발팀은 향후 사회·수학·과학 교과서의 단어와 신문 용어, 간판 표현 등도 앱에 추가할 예정이다. 개발팀은 “지금은 탈북 학생이 대상이지만, 계속 업데이트 해나가면서 글동무가 약 3만명에 달하는 탈북 주민들의 언어 길잡이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