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드라마 첫 주인공 맡아 ‘막내’, ‘개구쟁이’ 이미지 떼어내다

올 여름 유행이라는 데님 의상으로 화보 콘셉트를 준비하면서 김흥수의 이미지를 곱씹어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이 그의 데뷔작 . 지금은 대스타가 된 이들의 신인시절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거니와, 그 중 한 명 김흥수도 그 시절 를 애청하던 세대의 기자에게는 인상적인 캐릭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이상하리만치 큰 키에 귀염성이 묻어나는 얼굴은, 어떤 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였다. 이듬해 시트콤 과 미니시리즈

를 거쳐 2004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의 ‘재수’ 역을 만났을 때, 김흥수에게 ‘진짜 배우’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였던 셈이다. 
  
그 후로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조용히 군에 입대한 김흥수는 한동안 대중의 시야 밖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고, 얼마간 잊혔다. 그런 그가 2013년 전역 이후 1년 만에 택한 복귀작은 판타지 사극 . 곧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작품이 지난 4월 3일 종영한 KBS 일일드라마 이다. 장장 6개월을 달려온 은 김흥수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데뷔 이래 주조연급 캐릭터로 브라운관을 누빈 그가 첫 주인공 역을 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끝나고 바로 제주도에 다녀와 3일 전에 서울에 도착했어요. 출연 배우들, 야외 스태프들 모두 8박 9일 동안 제주도에서 낚시하고 술 마시고.(웃음) 저희 팀 분위기가 되게 좋았어요.”

아직 종영한 게 실감이 가지 않는 눈치다. 현장 분위기가 좋은 작품은 시청률도 잘 나온다더니, 역시 20%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동시간대 2위, 썩 괜찮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사실 (이 작품을) 안 하려고 했어요. 원래 좀 쉬었다가 다른 작품을 물색하려고 했는데, 가 끝나는 주에 감독님이 직접 촬영장으로 찾아오셨어요. 정작 저는 대본도

보지 못한 상태였죠. 그런 적이 처음이었고, 이렇게 찾아오실 정도면 대본을 안 봐도 믿고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라도 따내고 싶은 일일드라마 주인공 자리였지만, 전작이 끝나자마자 며칠만에 바로 투입되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준비할 시간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거든요. 가 월요일에 끝났으면 토요일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가야 되는 스케줄이었으니까요. 거의 쉬질 못했어요. 근데 막상 끝나니까 행복하면서도 이상해요. 이래도 되나? 이렇게 쉬어도 되나? 하는 느낌.(웃음)”

극중 김흥수가 맡은 ‘천성운’은 패션 회사 위너스 그룹의 본부장이자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냉혈한이다. 단정한 슈트 차림에 환하게 웃는 법이 없는 천성운은 기존에 김흥수가 맡아온 캐릭터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 때문에 초반에 굉장히 고생했어요. 감독님이 ‘이번엔 좀 시크하게 가보자’ 해서 시크하게 가면 계속 무섭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족들 보는 시간대라 더(그랬던 것 같아요). 5회까지는 계속 다시 찍었어요.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적정선을 찾는 게 어려웠죠. 무슨 느낌인지 알고 (재촬영을) 다시 하면 되는데 그걸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초반에 고생하고 그 뒤로는 포기를 하신 건지(웃음) 마음껏 하라고 많이 놔주셨어요.”

얼핏 얼핏 입가에, 눈동자에 김흥수 특유의 장난기 어린 이미지가 어려있지만, 군 입대와 제대를 기점으로 김흥수는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사실 연기자가 나이를 먹어 가는데 억지로 기존의 분위기만 내세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반대로 원래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는데

억지로 연출만 한다고 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아닐 테고요. 아무래도 회사에서는 캐스팅의 폭을 넓히기 위해 그런 (막내아들 같은) 이미지를 가능하면 지우려고 하죠.”
제대 후 보다 성숙한 이미지로 거듭나려는 김흥수지만, 집에서는 영락없는 ‘진짜’ 막내다.(그는 삼남 중 막내다) 일일드라마 출연 이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 주 시청자인 엄마다.

“엄마가 정말 좋아하세요. 딱 엄마가 보는 시간대 방송이니까요. 그래서 이번에 작품 끝나고 제주도 갔다 오니까 엄마가 되게 심심해하시더라고요.(웃음)”
“혼나지 않기 위해 연기하던 시절, 연기에 회의감 느껴…”

1998년 모델로 데뷔한 김흥수의 당시 나이는 중3, 열여섯이다. 워낙 키가 크고 마른 몸매다 보니 모델로 활동하기에는 제격이었던 것. 한데 그는 원래 모델도, 배우에도 관심이 없었단다.

"사실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델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원래 되게 숫기가 없거든요."

인터뷰 중에도 그리 말이 많지는 않았으니 숫기가 없다는 말은 인정. 그런 그 자신도 배우가 될 줄 몰랐지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사실 모델을 하라고 제안한 건 큰 형이에요. 좋게 말해서 제안이지, '너 커서 뭐 될래' 같은 거였죠. 중1 때까지는 농구선수를 꿈꿔서 농구를 했어요. 그러다 무릎을 크게 다쳤죠. 지금도 양쪽 무릎이 달라요.(무릎을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오른쪽 무릎이 튀어나와 있다) 오래 뛰면 아파요. 그래서 농구를 포기했는데, 이미 운동한다고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인 데다 공부는 하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우연히 모델을 시작하게 됐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대충 연기하고 대충 노력해서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연기하다보면 어느 때는 현기증이 나고 피가 막 거꾸로 올라오는 걸 느낀다. 대본에 집중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그럴 때면 사람들이 인터넷에 '저 사람이 그 질질질(에서 질질 울던 극중 막내 재수를 가리키는 말) 맞아? 하고 글을 올리더라"라고 말했던 김흥수니까.

"옛날에는 되게 수동적인 연기를 했어요. 17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땐 막 맞고 그랬거든요. 감독님도 때리고 선배들도 때리고.(웃음) 그러다보니 혼나는 것에 노이로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혼나지 않기 위한 연기를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근데 혼나다 보니까 오기도 생기고, 잘 하고 싶고.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래도 마음껏 연기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안에 벽이, 환경이 만든 벽이 있었어요."

스스로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잦아들면서 어느 순간 회의감 비슷한 게 찾아왔다. 자연스레 군에 입대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촬영장의 '몸통'이다.  

"데뷔한 지 꽤 오래됐는데, 저는 지금 중간 위치인 것 같아요. 후배들과 선배님들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게끔 중간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선배님들이 애들한테 뭔가 얘기하고 싶은데 직접 얘기 못하시는 경우 저를 부르시거든요. 그밖에도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요. 뭐랄까, 겁이 없어졌다고 할까? 이제 나이도 안 어리고.(웃음) 하고 싶은 거(연기) 하고 싶어요."

올해로 서른셋의 김흥수도 슬슬 결혼을 준비할 나이가 됐다. 그 오랜 기간 스캔들 한번 없이 깨끗한 사생활을 자랑하는(?) 그는 언제쯤 '품절남' 대열에 합류할까.

"저는 연애 맘껏 했는데 소문이 안 났어요.(웃음) 서른여덟에 결혼하는 게 바람이었는데, 슬슬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연애한지도 꽤 되니까 겁이 나요. 제 나이가 연애하기 되게 애매한 나이 같아요. 난 아직 결혼 준비가 안 됐는데, 저랑 연애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결혼 적령기인 거죠. 뭔가 '썸'이 있을 것 같다가도 제가 겁먹고 빠지는 경우가 생겨요."

김흥수는 곧 두어 달의 충분한 휴식기를 갖기 위해 해외로 떠날 계획이다. 차기작 선택을 앞두고, 두 작품을 연달아 달려온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10년 전, 호일 펌을 하고 해사한 미소를 짓던 20대 초반의 김흥수가 남은 30대를 어떤 색으로 채워나갈지 기대된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0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