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가 이번 주 중대한 전기를 맞는다. 갚아야 할 채무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는 가운데, 채권단으로부터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비해 점검에 들어갔고, 유로존의 맹주 독일에서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용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11일 EU 재무장관회의서 극적 타결 노려

그리스는 올 초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한 이후 IMF·EU(유럽연합)·ECB(유럽중앙은행)로 구성된 국제 채권단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 왔다. 구제금융 프로그램 종료를 코앞에 두고 그리스는 지난 2월 채권단과 극적으로 합의를 이뤄 일단 급한 불을 껐는데, 주요 내용은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6월까지 연장한다 ▲그리스 정부의 긴축안을 제출한다 ▲긴축안을 평가한 뒤 채권단이 구제금융 잔여 지원금 72억유로를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일정대로라면 진작 협상을 마치고 72억유로를 지원받았어야 했지만,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이 서로 배짱을 튕기며 '치킨 게임'을 하다 벼랑 끝에 이르렀다.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유로그룹)는 11일 오후 3시(현지 시각)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벌인다. 채권단이 그리스가 제출한 추가 긴축안을 받아들여 곧바로 72억유로를 지원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일단 그리스 은행들의 단기 국채 매입 확대를 허용해주고 그리스 은행에 대해 ECB가 유동성을 추가 지원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회의를 채 하루도 남기지 않은 가운데 채권단과 그리스 정부 간에 시각 차가 여전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그리스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구제금융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는 내용이 성명서에 담길 것이며, 조만간 최종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데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해결되지 않은 현안들이 너무 많으며, 그리스가 기대하는 것이 포함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심지어는 채권단 사이에도 이견이 존재한다. IMF는 그리스에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동시에 유로존 국가에 대해서도 그리스의 부채 상당 부분을 탕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450억유로(약 300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의 부채 부담이 너무 높아 이대로는 그리스 경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유로존 국가들은 IMF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11일 회의에서 그리스 자금난의 숨통이 트이지 않을 경우 곧바로 그리스 디폴트 우려가 고조될 전망이다. 바로 다음 날인 12일 그리스가 IMF에서 빌렸던 7억5200만유로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현재 채무 상환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대로 11일 회의에서 일단 급한 불을 끈 다음 6월 안에 72억유로 지원이 결정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7, 8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채무가 72억유로를 훨씬 웃돌아 지원금이 금방 바닥나기 때문이다.

IMF, 그리스 디폴트 대비 돌입

이런 가운데 IMF가 그리스의 디폴트에 대비해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등 남유럽 인접국가들과 비상대책(contingency plan)을 논의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0일 보도했다. IMF가 그리스 채무협상 실패 가능성에 공개적으로 대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외르그 디크레신 IMF 유럽 담당 부국장은 "이들 국가의 그리스계 은행들이 모회사의 자금이 끊겼을 때 비상자금으로 쓸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을 각 국 중앙은행에 보유하고 있는지, 예금보험기금이 충분한지 등을 확인할 것을 각국 감독 당국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들 국가는 그리스 국적 은행의 영향력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설령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진다고 해서 곧바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디폴트→뱅크런(은행에서 자금 이탈)→자본통제 및 자체통화 발행→경기침체·정치혼란→유로존 탈퇴 국민투표 등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에서 유로존이 얼마나 개입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리스의 부채 중 민간이 보유한 비율은 20%밖에 안 돼 2011년 남유럽 위기 때처럼 다른 나라로 전염될 가능성은 낮지만, 프랑스 등 다른 나라의 탈퇴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유로존의 고민이다.

국제금융센터 김위대 연구원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기보다는 6월 말까지 재협상을 하다 결국 72억유로를 받아내고 이후 3차 구제금융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