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국 독일이 2차대전 종전(終戰) 이후 이웃 국가에서 강제 추방당한 자국민 1000만여명을 추모하는 데는 70년의 반성이 필요했다.
20일 수도 베를린 역사박물관에서는 처음으로 '도주와 추방으로 인한 피해자를 위한 추모일'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2차대전 이후 고향을 강제로 떠나야 했던 독일인을 추모하기 위한 첫 공식 기념일"이라며 "독일인이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수십년 만에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더 이상 스스로의 죄를 묵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지 중도 우파 일간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너차이퉁은 "독일 국가수반이 독일인들이 추방된 지 70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이들을 추모했다"고 했다. 독일은 최근 세계 난민의 날과 동일한 6월 20일을 '도주와 추방으로 인한 피해자를 위한 추모일'로 지정했다.
이날 가우크 대통령이 언급한 독일인 추방은 2차대전 이후 폴란드·체코·헝가리·유고슬라비아·루마니아 등에 거주하던 독일인 1200만~1400만명이 국외로 추방된 사건을 말한다. 그는 "연합국은 독일인 강제 이주가 나치 독일이 초래한 죽음과 테러에 대한 합당한 조치라고 여겼다"며 "피란길에서 여성·아이·노인을 태운 열차가 공습받고, 피란선이 어뢰를 맞고 침몰하는 등 전쟁과 기아·질병으로 난민 수십만명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인의 죄와 독일인이 겪은 고통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추방된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고도 감정적인 일이었다"며 "수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더 이상 독일이 저지른 죄를 묵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1970년대부터 우리는 전 유럽에 죽음과 재앙을 불러온 것이 나치 독일이며, 이것이 독일인들의 고통을 가져온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추방이 불법이었다는 것을 1990년대 이후 인정해 온 이웃 국가를 일일이 언급하며 "관대한 아량과 새로운 신뢰에 감사하다"고도 했다.
가해국인 독일이 전쟁 이후 자국 피해를 언급하는데도 주변 피해국이 반발하지 않는 것은 그간 독일이 끊임없는 과거사 반성을 통해 새로운 신뢰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독일과 폴란드에서는 각국의 응답자 75%가 양국 관계가 좋다고 응답했다. 독일과 체코의 경우 양국 관계에 대한 긍정적 답변은 60%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