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차로제 위반으로 단속된 운전자 중 일부는 민망하게 웃거나 머리를 긁적였고, 일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화를 냈다. 경찰관에게서 '지정차로제 준수' 전단을 받고 설명을 듣던 이들은 범칙금 고지서가 인쇄되는 순간 하나같이 굳은 얼굴이 됐다.

추월차로인 고속도로 1차로를 정속 주행하는 차량 등에 대해 경찰이 본격적으로 단속에 나선 20일 고속도로 곳곳에서 나타난 풍경이다. 지난 7일부터 본지가 '1차로는 비워둡시다' 기획 시리즈를 보도한 이후 단속 필요성을 느낀 경찰은 이날부터 지정차로제를 위반한 운전자들에게 벌점과 범칙금을 부과했다. 지정차로제를 위반하면 승용차와 4t 이하 화물차는 4만원, 승합차나 4t 초과 화물차와 건설·기계 차량 등 대형차는 5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벌점은 모든 차량이 10점을 받는다. 그동안 추월차로 위반 차량에 대해 경찰은 주로 계도(啓導)하는 수준에 그쳐왔지만, 이날부턴 달랐다.

범칙금 4~5만원·벌점 10점 - 경기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김민우 경사가 20일 추월 차로인 1차로로 계속 달린 차량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안성휴게소로 이동시킨 뒤 범칙금 고지서를 끊어주고 있다. 지정차로제를 위반하면 승용차 및 4t 이하 화물차는 4만원, 승합차나 4t 초과 화물차와 건설·기계 차량 등 대형차는 5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벌점은 모든 차량이 10점을 받는다.

이날 1차로 정속 주행으로 단속된 일부 운전자들은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앞에 차가 없으니 계속 갔지. 봐요. 1차로에 차가 없잖아요." 이날 오후 4시 18분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안성분기점 인근에서 1차로로 계속 달리다 적발된 SUV 운전자 J(53)씨는 격한 어조로 경기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김민우 경사에게 항의했다. 이 운전자는 시속 100~110㎞ 속도로 1차로로만 4㎞ 이상을 주행했다. 사이렌을 켜고 급하게 달리던 구급차는 J씨 차량 때문에 속도를 줄이다가 2차로로 돌아 추월해야 했다. 경찰이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범칙금 고지서를 건네자마자 J씨는 화난 얼굴로 차를 출발시켜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같은 날 오후 2시 23분쯤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평택~화성 구간 평택 방면에서 1차로 정속 주행으로 적발된 운전자 K(여·53)씨는 "'추월차로'에 대해 알았으면 당연히 지켰을 것"이라며 민망하게 웃었다. 그러나 벌점을 받고 범칙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언제부터 범칙금이 있었느냐"며 "주변에 경찰차가 보이기에 '내가 과속했나' 생각하고 속도를 줄이다가 1차로에서 천천히 가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후 5시 42분쯤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에서 단속된 40대 초반 여성 운전자 역시 "잘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범칙금과 벌점을 준다는 얘기에 얼굴이 굳어졌다.

일부 도로에선 지정차로제를 준수하는 차량이 늘어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날 오후 경부고속도로와 제2순환고속도로에선 1차로를 달리던 차량들이 다가온 순찰차를 보고 2차로로 빠지는 모습이 수십 차례 눈에 띄었다. 기자가 지난 7일과 14~15일 찾았던 같은 장소에선 순찰차가 1차로 차량 바로 뒤에 붙어도 대부분의 앞차가 동요하지 않았던 모습과 대비됐다. 박병건 경장은 "순찰차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다시 1차로에 차가 많아지긴 하지만, 분명 '1차로 계속 주행은 위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실제로 제2순환고속도로에서 단속에 걸린 승합차 운전자 임모(54)씨는 "며칠 전 TV에서 '추월차로로 쭉 가면 안 된다'는 뉴스를 봤는데도 오늘 무심코 1차로로 달렸다"고 했다. 김민우 경사는 "'버스전용차로제'처럼 지정차로제가 많이 알려지면 순찰차가 고속도로를 돌아다니기만 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속도로 1차로 비워두세요" 경찰 단속 본격 시작 - 경기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가 20일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평택~화성 구간 평택 방면 1차로를 정속 주행하는 검은색 승용차를 쫓고 있다. 승용차는 2차로가 비어 있는데도 계속 1차로로 달리고 있어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이 승용차처럼 1차로로 달려 2차로 차량을 앞지른 뒤 오른쪽에 공간이 있는데도 2차로로 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정속 주행을 하면 지정차로제 위반이다. 본지가‘1차로는 비워둡시다’기획 시리즈를 연속 보도한 이후 경찰은 지정차로제 위반 차량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날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해 위반 차량에 벌점과 범칙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경찰 단속을 통한 계도와 홍보만으로는 '1차로 비우기' 문화가 정착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력이 넉넉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고속도로 통행량의 절반을 담당하는 경기청 고속도로순찰대 관할 434.9㎞ 구간은 경찰차 12대가 동시에 순찰하고 있다. 여름철 특별 단속 기간에 경찰차 2대가 늘었지만, 이들만으로 모든 현장을 확인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박사는 "젊은 운전자일수록 추월차로에 대해 제대로 듣거나 배운 적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법규 내용과 단속 사항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한국도로공사도 경찰 집중 단속 기간에 맞춰 홍보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도로공사는 이르면 이달 말부터 전국 고속도로에 설치된 896개 전광판(VMS)에 '지정차로제 준수' 문구를 띄우기로 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그동안 무인 비행선으로 법규 위반 차량을 촬영해 경찰에 고발해왔는데 앞으론 추월차로 위반 차량도 촬영해 고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