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닛케이)신문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FT)를 인수했다는 자사 홈페이지 머릿기사에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강력한 경제 미디어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 말대로 ‘유례가 없는’ 경제 미디어의 출현이다. 그리고 동양적 가치를 가진 아시아 언론의 첫 구미 대형언론 인수다. 온라인의 강자인 아마존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허핑턴 포스트 등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매체 출현에 이어 미디어계의 지형과 모습이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일본 미디어회사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매각된다

127년 역사의 세계 유력 경제일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일본 미디어회사 닛케이에 매각된다. 매각가는 8억4400만파운드(약 1조5000억원). 글로벌 언론사 인수 합병 역사상 최대 금액이다. 다만 이번 거래엔 피어슨이 50% 출자한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인수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런던 소재 컨설팅사인 클라우디오 이스페시의 샌포드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FT 대주주였던 피어슨의 관점에서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가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매각된 주요 글로벌 언론사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13년 2억 5000만 달러에 팔렸고, 같은 해 보스턴글로브도 7000만 달러에 매각됐다.

◆ 일본 대형 언론의 글로벌 시장 진출 본격화 선언

전문가들은 닛케이의 이번 결정이 글로벌 경제 매체로서 본격적인 영향력 강화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FT는 영미권을 넘어 글로벌화에 성공한 미디어다. FT는 지난 4월말 현재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합쳐 전체 가입자가 72만2000명으로 지난 5년동안 30%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중 온라인 FT.com 가입자는 52만2000명에 달한다.

반대로 닛케이는 자국 영업에 치중해 왔다 . 닛케이는 2013년에야 ‘아시안리뷰’라는 영문판을 출범했다. 뉴욕타임스는 언론계를 인용해 “닛케이가 FT를 통해 손쉽게 글로벌화와 디자털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2013년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아마존에게 매각된 워싱턴 포스트와는 상황이 다르다. 최근 온라인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글로벌 출판 미디어에선 글로벌화와 디지털 기술에 대응하는 능력 부족을 우려하고 있었다.

가디언, 슈피겔 등 신문을 기반으로 한 유럽계 대형 언론사들도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해 왔다. 허핑턴포스트도 전 세계 시장을 넓히고 있으며,독일 미디어 기럽 악셀스프링어는 글로벌 인터넷매체 폴리티코(Politico)와 손을 잡았다. 일본에서도 신문을 비롯한 출판 미디어의 하락세가 뚜렷했다.

◆ 언론 문화 가치 충돌 우려 “우려가 화 키운다”

닛케이와 FT는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설립된 이 두 회사는 자국 경제 부문의 시장지배기업으로, 닛케이 225(일본), FTSE100지수(영국) 등 국가의 주요 경제 지수를 발표한다. 닛케이와 FT는 상호 편집 협력관계이기도 하다. FT는 닛케이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배포한다.

하지만 현재 두 대형 언론사 합병에 대해 장점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 일본과 영국 언론이 갖는 문화적 차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어와 영어라는 언어적 차이도 있고, 두 회사는 비즈니스 로직 자체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닛케이는 자국(일본)에 대한 보도나 글로벌 기업 관련 보도에 있어서 보수적이거나 편파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금융 스캔들이나 불법 제품 유통과 같은 기업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주간지나 외신에서 먼저 보도한 다음에 후속 보도를 하는 식이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닛케이의 기타 쓰네오 사장은 “같은 언론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포드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도 “닛케이가 FT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조심스럽게 다룰 것이라고 본다”면서 “걱정이 오히려 화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FT 매각을 둘러싼 뜬 소문이 난무했다. 블룸버그는 21일 여러 기업이 FT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고, 23일 오후(현지시간)엔 FT가 스스로 유력한 소식통을 인용해 독일 미디어 그룹인 악셀 스피링거가 유력한 잠재 인수 후보라고 전했다. 하지만 불과 1시간 후에 닛케이와 피어슨의 매각 합의 소식이 발표됐다.

피어슨의 전 최고경영자(CEO) 마저리 스카디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FT를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지난 2013년 1월 취임한 후임 존 팰런 CEO가 교육사업에만 전념하면서 FT 매각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번 계약 성사로 피어슨은 자사 매출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는 교육 출판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피어슨은 북미 지역 표준 시험 관련 시장 60% 이상을 과점한 기업이다. 피어슨 존 팰런 최고 경영자(CEO) 는 이날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의 빠른 성장으로 미디어 산업 자체가 변곡점을 맞았다"면서 "지금은 글로벌 교육 전략에 100% 집중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날 피어슨의 주가는 런던 시장에서 장중 최고 2.4%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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