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게임에서는 딱 한 가지 규칙뿐이다. 사냥하거나 사냥을 당하거나.”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는 읊조린다. 언더우드는 원내대표(시즌1)에서 부통령(시즌2)을 거쳐 대통령(시즌3)까지 끊임없이 권력을 얻기 위해 뛴다.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성 추문을 이용하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드라마는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권모술수와 부정을 가감 없이 묘사해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주인공 언더우드가 한국 정치인 누구와 닮았는지가 이야깃거리가 됐다. 많은 애청자가 이완구 전 총리를 ‘언더우드의 닮은꼴’로 꼽았다. 닮은 외모와 둘 다 원내대표 출신인 점 등이 언더우드와 이 전 총리가 겹쳐 보이는 이유다. 이 전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부정을 저질렀다는 눈초리를 받는 것도 닮았다.

◆ 같은 당 의원도 인정한 언더우드-이완구 닮은꼴

지난 3월 국회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 특별시사회가 열렸다. 하필 정치권의 음모와 권력다툼을 다룬 드라마를 여러 국회의원을 앉혀두고 국회에서 보여줘 의외라는 반응을 샀다. 당시 시사회에는 이완구 전 총리도 자리했다. 시사회를 연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은 “정치 선진국인 미국의 정계를 배경으로 한 ‘하우스 오브 카드’를 통해 한국 정치도 배우는 바가 있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박 의원은 드라마 모래시계, 태왕사신기, 이산 등을 만든 유명 제작자이기도 하다.

박 의원은 이날 시사회에서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 이완구 총리가 캐빈 스페이시와 느낌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전 총리는) 뭔가 힘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사회 사회자인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이 전 총리가) 차기 대선 나오려 한다”면서 웃었다. 드라마 속 언더우드가 그랬듯 이 전 총리도 여당 원내대표를 거쳐 차기 대통령을 노린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전 총리와 드라마 속 언더우드의 정치 행보가 비슷하다. 이 전 총리는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됐다. 언더우드도 미국 하원 다수당 원내대표 출신이다. 미국에선 원내대표를 '윕(whip)'으로 부른다. 사냥개가 흩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람인 'whipper'에서 따온 말이다. 의원을 통솔한다는 의미다. 언더우드는 사무실 한 쪽 벽면에 의원들의 이름이 각각 쓰인 팻말을 붙여놓았다. 사안이 터지면 어느 의원이 '내 편'이 돼 찬성표를 던질지 한 명 한 명 따져본다. 언더우드는 찬성표가 부족하다 싶으면 전화를 걸거나 직접 만나 의원을 설득하고 때론 협박도 한다.

언더우드는 원내대표와 부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돼 최고 권력을 얻는다. 이 전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국무총리가 되는 부분과 겹치는 부분이다. 앞서 안대희, 문창극 두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서기 전에 낙마한 뒤라 '총리가 될 사람이 이렇게 없나'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우여곡절에 끝에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구 당시 원내대표를 총리로 지명한다. 박 대통령이 집권 3년 동안 낸 6명의 총리 후보자 중 정치인 출신은 이 전 총리가 유일하다. 무엇보다 친박계인 데다 여당 원내대표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청문회 과정에서 병역기피, 투기, 언론 통제 등 여러 의혹이 불거졌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인 출신으로 '야당과도 말이 통한다'를 평가를 받기도 했다.

◆ 권력 향한 질주…뇌물 매수 살인까지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은 주인공 언더우드가 배신을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평범한 정치인이던 개럿 워커(마이클 길 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대통령을 만든 언더우드. 워커는 당선 후 언더우드에게 국무총리 자리를 약속한다. 하지만 워커는 말을 바꾼다. 언더우드는 복수를 다짐한다. 상대방에게 불리한 정보를 일부러 기자에게 흘린다. 언더우드는 권력 의지를 불태우며 점차 정치적 목표를 높인다. 시즌 2에서 언더우드는 부통령으로 지내며 대통령을 돕는 '척' 하지만 실은 차기 대권을 노린다.

TV 생중계 연설 중인 대통령 뒤에 선 언더우드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한다. "난 항상 가장자리에 있었지. 이제 저 자리(대통령)까지 1미터도 안 남았어."

이 전 총리가 공개적으로 대권 출마 의지를 밝힌 적은 없지만 총리로 임명됐을 때 ‘총리에서 그칠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정치인이 대권 주자로 서는 ‘큰 꿈’을 가지는 게 흠은 아니다. 높은 자리로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정치인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드라마 속 언더우드는 권력을 얻기 위해 성 추문, 매수부터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다. 시즌1에서 언더우드는 자신이 밀던 주지사 후보 피터 루소가 자신의 정치 기반을 흔든다고 판단하자 그를 죽이고 자살로 조작한다. 언더우드가 흘려준 정보로 특종 기사를 썼던 기자 조이 반스는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언더우드의 행적을 뒤좇는다. 시즌2 초반부 언더우드는 반스를 지하철역에서 밀어버리고 사고 처리한다. 언더우드는 자신을 쫓는 이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넣어 처치하지만 내년 방송이 예정된 시즌4와 그 이후 이야기에서 언더우드가 끝까지 피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 엎어진 정치 행보…이완구 재기하나

정치 스릴러 하우스 오브 카드는 언더우드가 온갖 모략으로 정치적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방송된 시즌3에서 언더우드는 대통령이 된다.

현실 속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로 궁지에 몰린 상태다. 지난 4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에 이 전 총리의 이름이 올랐다. 성 전 회장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보궐선거 기간이던 지난 2013년 충남 부여군의 선거사무실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현금 3000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다. 지난 7월 첫 재판이 열렸다.

이 전 총리의 최측근은 재판 전인 7월 2일 이 전 총리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바로 다음 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측근 개인의 의견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재판에서 무죄를 증명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인 만큼 내년 총선에서 명예회복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선거구 조정을 염두에 두고 세종시에서 출마할 것이란 말도 돈다. 이 전 총리가 정계로 돌아올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 포스터 속 성조기는 이상하다. 거꾸로 돼 있고 50개 주를 상징하는 별은 지워졌다. 욕심을 채우려고 국가마저 희생시킬 정치인 때문에 국가가 위험에 처했다는 의미다.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드라마 시리즈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 주인공 언더우드의 결말은 아직 모른다. 이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다만 시청자들은 현실 정치인 이 전 총리가 언더우드처럼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돼 있다”며 정치의 본질은 음모와 술수라고 믿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