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 사고는 업체와 직원이 정비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토요일이던 이날 오후 7시27분쯤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던 직원 조모(29)씨는 작업 도중 역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서울 시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참혹한 사고 장면을 그대로 지켜봤다.
30일 서울메트로는 “2013년 만든 ‘스크린도어 정비 매뉴얼’에 2인 1조 작업 원칙 등이 포함돼있는데,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매뉴얼대로라면 안전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점검을 해야 하지만 사고 당시 조씨는 혼자 작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씨가 소속된 정비업체는 이날 오후 6시41분쯤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를 받은 뒤 조씨 한 명만 현장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7시20분쯤 강남역 현장에 도착한 조씨는 직접 스크린도어를 연 뒤 들어가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서울메트로는 2013년 2호선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이후 정비 매뉴얼을 만들었다. 2013년 1월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이 문 안쪽에서 센서를 점검하던 중 진입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진 사고였다. 당시 서울메트로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2인 1조 점검’, ‘지하철 운행 시간에는 스크린도어 내 진입 금지’, ‘스크린도어 내 진입 시 사전 보고’ 등 원칙을 정해 협력 업체에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 강남역 사고의 경우, 조씨가 열차 운행 상태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감행하는 등 이런 원칙들이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메트로 측 설명이다.
메트로 관계자는 “지하철 운행 시간엔 승강장에서만 작업하게 돼있고, 지하철 운행을 중단해달라는 연락이 관제센터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면서 “기본적으로 협력 업체가 정비 인력을 운용하고 메트로에는 지휘 감독권이 없어 정확한 원인 파악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강남경찰서는 CC(폐쇄회로)TV를 분석하는 한편 협력 업체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조씨만 보낸 이유, 협력 업체와 조씨가 스크린도어 진입 시 관제센터에 보고했는지 여부, 조씨가 사고 당시 선로 쪽에 있었던 이유 등 정확한 사고 경위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불감증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 스크린도어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지하철·전철역 등에 설치된 스크린도어 중 ‘안전보호벽(스크린도어와 도어 사이에 설치된 강화유리벽)’을 100%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설치된 곳은 22%에 불과하다. 나머지 80% 가량은 안전보호벽 일부만 개폐가 가능한 고정식으로, 2010년 이전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는 고정식이 대부분이다. 결국 이번 강남역 사고처럼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낄 위험에 처하거나 열차 화재가 발생한 경우 등 비상시에 탈출이 힘들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올 5월 “스크린도어 안전보호벽을 모두 여닫을 수 있도록 개선하라”고 국토교통부에 권고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