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대법원이 50여년 이어온 이혼 소송의 대원칙인 ‘유책주의’ 판례를 재확인하면서 앞으로도 원칙적으로 잘못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해외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이미 이혼을 폭넓게 인정하는 파탄주의를 채택해왔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애초 이혼을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이제는 파탄주의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각 주는 전통적으로 유책주의 입장을 취해오다가 1969년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으로 ‘무귀책 이혼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혼인생활 파탄 또는 일정기간 별거 등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1985년 사우스다코타주를 마지막으로 모든 주가 이 제도를 채택했다. 다만 실제 운영 방식은 주별로 다소 다르다.
프랑스는 18세기 혁명 이전에는 원칙적으로 이혼이 금지됐다. 1884년 이혼제도가 부활되면서 간통, 신체·명예죄, 방탕, 가혹행위 등 정도만 이혼 사유로 인정했다. 1975년 민법을 개정하면서 이혼에 동의하는 경우와 공동생활이 파탄 난 경우를 이혼 원인에 추가하면서 파탄주의를 도입했다. 2004년 개정된 이혼법은 이혼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완전히 인정, 이혼 자유화를 도입했다. 다만 이혼 과정에 배우자와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당사자 간 합의의 적합성 여부를 따지는 방식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있다.
독일도 1976년 이혼법에서 유책주의를 포기하고 파탄주의 이혼법을 전면 도입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혼인의 파탄을 유일한 이혼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더라도 ‘가혹 조항’을 통해 미성년자 자녀와 이혼 상대방 배우자를 고려하도록 했다. 부부 관계가 파탄이 나 이혼이 불가피하더라도 미성년 자녀나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배우자가 이혼으로 정신적·경제적으로 심각한 침해를 받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축출(逐出)이혼’을 막기 위해 마련한 조항이다. 아주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영국도 17세기 이전에는 교회법에 의해 이혼이 불허됐고, 다만 배우자의 간통, 유기와 학대가 있는 경우 별거는 인정됐다. 1973년 이혼법은 혼인 파탄을 이혼 사유로 규정하면서도 파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5개 개별 이혼 사유를 입증하도록 규정해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혼합한 과도기적 형태를 띠었다.
일본은 민법에 이혼 사유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파탄주의에 의한 이혼 사유로서 혼인관계가 심각하게 파탄돼 부부의 공동생활이 회복될 가망이 없을 경우 이혼을 허용한다고 판례에서 밝히고 있다. 일본 역시 이전 판례는 파탄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의 이혼 청구는 허용하지 않았다. 1987년 최고재판소의 판례 변경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일정한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적극적 파탄주의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