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3등급인 직장인 장모(32)씨는 지난 6월 평소 자주 가던 회사 근처의 한 은행 지점을 방문해 마이너스통장(신용한도대출)을 개설했다. 3000만원 한도에 금리는 연 4.1%인 조건이었다. 장씨는 급할 때 돈을 꺼내 쓰는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4% 정도면 꽤 낮다는 생각에 만족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최근 본인과 똑같은 신용등급인 직장 동료가 다른 은행에서 연 3.7%의 금리로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기분이 상했다. 장씨는 “‘조금 더 발품을 팔고 통장을 만들걸’이라는 후회가 들었다”며 “은행의 호구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같더라도 어떤 은행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최대 1.6배까지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본지가 지난 21일 처음 공시된 은행연합회 자료를 토대로 16개 시중은행 마이너스통장의 신용등급별 금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은행연합회는 그동안 주택담보대출과 일반신용대출 금리만 공시하고, 마이너스통장은 공시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하지만 지난 21일 금융 당국 지시로 홈페이지(www.kfb.or.kr)에 신용등급별 금리를 공시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마이너스통장 이용 잔액은 약 46조원. 우리나라 가계 전체 신용대출의 47.7%를 차지한다.
평균금리 신한 최저... 高신용자는 부산·농협 유리
본지가 은행연합회에 공개된 은행별 마이너스통장 금리를 분석한 결과, 16개 시중은행 중 평균금리가 가장 낮은 곳은 신한은행(연 3.62%), 가장 높은 곳은 한국씨티은행(연 5.81%)이었다. 신한은행 다음으로 낮은 곳은 NH농협은행(연 3.72%), KDB산업은행(연 3.83%), 하나은행(통합 전·연 3.85%) 순이었다. 씨티은행을 비롯해 대구은행(5.57%), 전북은행(5.25%)과 광주은행(5.21%)은 평균금리가 연 5%를 넘었다.
하지만 평균금리만으로 특정 은행이 마이너스통장을 “싸게 내준다”거나 “비싸게 내준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평균금리가 낮은 은행은 신용 상태가 좋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 위주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평균금리가 높은 은행은 저신용자에게도 마이너스통장을 내주다 보니 금리가 올라갔을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우량 고객 대상 신용대출이 많은 편이데, 특정 회사 직원이나 직업군의 경우엔 등급에 상관없이 저금리를 일괄 적용해 주기 때문에 평균금리가 낮고 등급 간 금리 차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평균금리가 아닌 신용등급별 금리의 경우, 고신용자(1·2등급)의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가장 낮은 은행은 BNK부산은행(연 3.37%)이었고, NH농협은행(연 3.44%), 신한은행(연 3.59%), 우리은행(연 3.76%) 순이었다. 씨티·대구·전북·광주은행은 평균금리뿐 아니라 고신용자 대상 금리에서도 연 4.4~5.62%로 높았다. 은행권이 취급하는 신용대출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5·6등급 대상으로는 가장 낮은 곳이 신한은행(연 3.85%)이었다. 하나은행(연 4.01%·통합 전), 국민은행(4.4%), BNK부산은행(연 4.71%)이 뒤를 이었다.
직업·직장에 따라 금리 깎아주는 특판도 많아
은행연합회에 공개된 마이너스통장 금리 비교표는 참고용으로만 삼는 것이 좋다. 은행 지점 중에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특정 직업군이나 직장인 대상 특판 영업을 통해 금리를 깎아주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적용 금리는 비교표와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은행 지점이 회계사들을 대상으로 ‘마이너스통장 특판’을 하고 있으면 다른 은행 지점에 비해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세종시 청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연 2.7%의 금리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주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판용 금리만 놓고 봤을 때는 역마진이지만,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면 지점에 이른바 ‘활동성 고객(수신 평잔 30만원 이상 등 금융 활동을 하는 소비자)’이 늘고, 펀드 판매나 카드 발급 등의 추가 실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마이너스통장 금리의 비교 공시로 은행 간 금리 인하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돈을 싸게 빌릴 수 있겠지만 대신 ‘채무 불감증’은 경계해야 한다. 세종대 경영학과 김대종 교수는 “마이너스통장은 일반 신용대출과 달리 중도상환수수료가 없고, 상황에 맞춰 쓰고 싶은 만큼만 빌려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추가 차입에 무감각해질 위험성이 크다”며 “통장을 굳이 열어야 한다면 나중에 한도를 늘리더라도 처음에는 최대한 낮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