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정오 서울 청계천 광교 아래. 다리 밑 그늘에 자리 잡은 직장인 10여 명이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쳤다. 30분이 지나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식사 후 커피를 들고 산책에 나선 직장인, 사진 찍는 외국인 관광객, 체험학습 나온 학생들로 천변이 북적였다. 낮 12시 15분부터 30분간 광교 아래를 지나간 사람은 1021명이었다. 청계천 인근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박시현(50)씨는 "청계고가가 사라진 초기에는 도심 교통 정체가 심해졌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도심 속에 이런 휴식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프랑스인 루이스 푸자드(32)씨는 "도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 아름답다"며 "서울에 오면 반드시 봐야 할 관광지로 주변에 추천하겠다"고 했다.
◇휴식 공간·관광명소가 된 청계천
1일은 청계천이 복원공사로 현 모습을 갖춘 지 10년 되는 날이다. 청계고가를 철거하고 복개됐던 하천에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공사는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약 2년간 진행됐다. 공사비 3867억원이 들었고, 시설 수리·점검 등 유지비로 매년 75억원가량 들어간다.
지난 10년간 청계천은 1억9144만여 명이 다녀간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작년 서울시의 '청계천 역사성 및 자연생태성 회복' 용역보고서에 실린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시민 19.4%가 청계천을 경복궁 등 고궁(38.7%), 남산타워(32.4%), 광화문(21.1%)에 이어 서울을 대표하는 시설로 꼽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20.4%가 청계천과 광화문광장 일대를 방문했다. 작년 한 해만 81만4000여 명의 외국인이 청계천을 찾았다. 행사도 끊이지 않는다. 복원 이후 이 일대에서 열린 크고 작은 행사는 2만9177건, 영화·드라마·광고·뮤직비디오 등 영상물 촬영은 864차례 이뤄졌다. 프러포즈 장소로 마련된 '청혼의 벽'에선 7년간 1254쌍의 예비 부부가 결혼을 약속했다.
◇청계천 덕에 도심도 살아나
청계천 인근에서 일하는 이들은 "청계천 덕에 휴일에도 도심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청계천이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주변에 고층 오피스 빌딩도 많이 들어섰다. 청계1~2가를 중심으로 2011년 전후 세워진 미래에셋 센터원빌딩, 페럼타워, YG타워, 시그니쳐타워 등 100m 넘는 높이의 빌딩들은 서울 도심의 새 랜드마크로 통한다. 인근 상권이 활기를 찾자 땅값도 훌쩍 뛰었다. 서울시 토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종로구 장통교 부근 상가 공시지가는 2002년 평당 610만원에서 올해 1440만원으로 2배 이상으로 올랐다.
차량이 줄고 '사람 길'이 늘어나면서 도심이 살아났다는 분석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조성 등으로 도심에서 차도 폭이 줄면서 차량 통행은 어려워진 반면 대중교통·보행환경 개선 등으로 걸어다니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했다.
◇환경과 역사 고증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
복원 10주년을 맞았지만 청계천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의 청계천은 조선시대 청계천보다 폭이 훨씬 좁고 수심이 얕다. 상류(신문로 방향)가 끊겨 있어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야 하는 '인공 수로'이기도 하다. 역사적 고증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청계천에서 자리를 잃은 '수표교'다. 수표교는 세종 23년 물 깊이를 잴 수 있도록 수표를 설치해둔 다리로,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청계천의 유일한 다리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이 완료되면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있던 수표교를 다시 청계천으로 옮기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표교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런 비판 속에 서울시는 작년 '청계천 역사성·자연생태성 개선 계획안'을 발표했다. 전문가와 시민 의견을 받아 마련한 것으로, '수표교 원위치 중건' 등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 청계천 복원 비용에 버금가는 3700여억원이 들 전망이어서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