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의 저주'가 산유국들을 강타하고 있다. 자원 수익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은 '천수답 경제'이다 보니 국제 저유가가 오래가면서 해당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작년 상반기 배럴당 100달러대이던 국제 유가는 올해 절반 수준이 됐다.

저유가의 충격이 큰 나라는, 석유 의존도가 높지만 저유가 시대 대비를 게을리했던 베네수엘라, 러시아, 브라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재정 절반을 석유에서 벌어들이는 베네수엘라는 올해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10%를 기록 중이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 모두 포퓰리즘 정책을 내걸어 국부(國富)를 축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지율 회복을 위해 국영 석유 회사 PDVSA의 수익금을 사회복지 지출에 돌리고 있다. PDVSA는 작년 매출 1160억달러 중 330억달러를 저소득층 지원에 썼다. 같은 기간 PDVSA가 석유 생산 설비 투자에 쓴 돈은 100억달러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석유 및 천연가스 수입이 국가 재정의 29%를 차지한다. 수출 비중은 68%에 이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올 상반기에 2% 이상 경제가 쪼그라들었다. 남미 자원 부국인 브라질 역시 올 2분기 경제가 1.9% 역성장하며 불황 늪에 빠졌다. 비교적 나은 편에 속하는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등 페르시아 만 산유국들도 20년 만에 처음 올해 재정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저유가의 충격은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에도 미치고 있다. 미국을 '악(惡)의 제국'으로 부르며 반미(反美)의 선봉에 섰던 이란은 저유가와 국제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올 7월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핵 합의를 맺었다. 이란의 자금 지원에 의존하던 시아파 국가 시리아는 이란의 지원 감소로 내전이 격화되고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단체 IS(이슬람국가)에 국토의 상당 부분을 내줬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노르웨이는 잘 버티고 있다. 이들은 고유가 시대에 외환 보유액과 국부 펀드를 꾸준히 늘려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르웨이 국부 펀드는 자산 8700억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외환 보유액은 6600억달러에 이른다. 김희집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는 "사우디가 유가 하락에도 석유 생산량을 늘리면서 미국 셰일가스 산업과 시장점유율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든든한 자금력 덕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