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視界)제로’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사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 인도네시아가 그런 상황입니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무(煙霧)가 대기를 뒤덮은 까닭입니다.

지난달 11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주(州) 출장길에서 연무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사방이 불투명한 연기로 가득했고, 활주로를 찾지 못한 비행기는 상공을 빙빙 맴돌았습니다.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산불이 만든 연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승무원이 “해마다 건기(乾期)가 되면 피어오르는 연무이니 동요하지 말라”고 설명했지만, 일부 승객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좌우측 모든 비행기 창(窓)이 서리가 낀 것처럼 부옇게 변해, 천지사방이 분간되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공항에 착륙하니 이제는 탄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신현동 코린도 조림본부 대리는 “한번 산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숲이 광대해서, 소방관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최대 15조원 경제피해… 해마다 되풀이되는 사상 최악의 연무

올해 연무는 인도네시아에 막대한 경제피해를 안겼다는 것이 전문가들 관측입니다. 항공기 운항 차질, 휴교, 교통사고 등 연무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계산한 것이지요. 벌써 호흡기 환자가 13만명을 넘었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인도네시아에서 호스에서 물을 뿜어내 불을 진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국제산림연구소(International Forestry Research estimates)는 “연무로 인한 산림감소, 농작물 생산저하, 관광산업 타격과 의료비용 지출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피해가 미화 140억 달러(약 1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비용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바람을 타고 넘어간 연무는 인접국가와 외교적 갈등마저 불러올 조짐입니다. 지난해 싱가포르 환경장관이 “인도네시아가 주변국가 국민의 안전에는 무관심하다”며 비난한데 이어 올해는 태국 외무장관이 “인도네시아 당국이 산불을 통제하기 위해 조치를 강화하라”고 나섰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총리가 나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SNS에 올릴 정도로 연무문제는 심각하게 주변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산불이 일으킨 연무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광활한 숲, 토탄층 발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기후 "집중호우 외에는 해결책 없어"

재앙에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연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97년에 인도네시아 칼리만탄과 수마트라 등지에서 발생한 그 당시 '사상 최악의 연무' 이래, 건기가 찾아오는 매해 6~9월이 되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학원강사 리즈키 아딧야(32)씨는 "연무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발표를 믿는 인도네시아 사람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