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공화당 후보 경쟁에서 의사 출신 흑인 논객 벤 카슨이 줄곧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를 제치면서 선거판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27일 발표된 뉴욕타임스와 CBS의 공동 여론조사( 전당대회 투표권을 가진 전국 공화당원 575명 대상)에서 카슨은 26%의 지지를 얻어 22%의 지지율을 기록한 트럼프를 따돌렸다. 7월부터 실시해온 뉴욕타임스와 CBS 조사에서 트럼프가 선두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달 초 실시한 같은 조사와 비교하면 카슨 지지율은 5%포인트 상승했고, 트럼프 지지율은 5%포인트 빠졌다.

게다가 내년 2월 1일 첫번째 공화당 당원대회(코커스)가 열리는 아이오와주(州)에서도 카슨은 트럼프를 크게 앞서고 있다. 블룸버그·디모인 레지스터의 여론조사에서 28% 대 19%, 퀴니피액대학 조사에서도 28% 대 20%였다. 특히 26일 공개된 몬마우스대학 조사에서는 32% 대 18%로, 격차를 14%포인트까지 벌렸다. 아이오와 당원대회는 가장 먼저 열리는 데다, 이곳에서 승리하면 최종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선 풍향계로 불린다. 지지율이 오르면서 지난 6일 아내 캔디와 함께 출간한 저서 '더 완전한 연방을 위해(A More Perfect Union)'도 10월 넷째 주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 2위에 올랐다.

카슨이 대선 주자로 떠오른 원동력은 권위 있는 의사라는 점이다. 싱글맘 밑에서 자라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한 후 미시간 의대에 진학했고, 존스홉킨스대 병원에서 최연소(33세) 소아신경외과 과장으로 발탁됐다.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해 명성을 얻었다.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2013년 국가 조찬기도회에 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세제 정책을 맹공해 보수층의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가 노골적인 '막말 제조기'라면, 카슨은 은근한 '막말 대왕'이다. 겉으로만 보면 조용조용한 말투에 이웃집 아저씨 같지만, 쏟아낸 '어록'이 트럼프 못지않다. 그는 과격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14세 때 급우를 칼로 찌르려 했고, 벽돌과 야구방망이, 망치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위협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성격이 불같던 시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삶이 바뀌었고, 지금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친 '보수 본색'과 그가 한 말의 황당한 논리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총기 규제를 반대하면서 "나치 독일 시대 유대인이 총기만 소지했더라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고, '무슬림 대통령 불가론'을 내걸어 시선을 끌었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감옥에 들어갈 때는 이성애자(異性愛者)였던 사람이 나올 때는 게이가 된다"고 했다가 사과했다.

카슨이 격한 발언을 하는 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을 이슈화하면서 공화당 선두주자로 떠올랐던 것처럼 당내 경선에서 우파 첨병을 자처해 흑인이 갖는 마이너리티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밑으로는 조직까지 다지면서 첫 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에서 지지율을 높였다. CNN은 "공화당 경선이 트럼프와 카슨 대결로 굳어지는 양상"이라고 보도했다. 백인 보수층을 끌어안으면서 흑인 표까지 기대할 수 있어 확장성 면에서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반면 걸림돌도 많다. 공직 경험이 없고, 외교·안보에 관해 문외한이라는 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화당 후보가 되더라도 흑인 대통령을 두 번 연속, 대선으로만 따지면 세 번 연속 선출하는 데 대한 유권자의 거부감을 해소하는 것도 숙제다. 종교계 일각에서 거부감을 드러내는 제7안식일재림교 신자라는 점도 불리한 측면이다. 카슨이 한발 앞서기 시작했지만 트럼프보다 지지율이 견고하지 못한 편이다. 뉴욕타임스·CBS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의 55%는 끝까지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했지만, 카슨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들 중에서 지지 후보를 바꾸지 않겠다고 대답한 비율은 20%에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원의 70%가량이 지지 후보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이오와 당원대회까지 석달이 남아 있어 판세는 아직 유동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