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척동 스카이돔 구장(球場·일명 고척돔) 계획은 2007년 '아마추어 야구의 성지(聖地)'로 불리던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면서 이에 대한 대체 구장을 짓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부지에 있는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고 대신 구로구 고척동 등 6곳에 야구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고척돔은 당초 돔구장이 아니라 2만석 규모의 아마추어 야구용 일반 구장이었다. 이후 7년 동안 8번의 설계 변경을 거쳐 지금은 완전 돔 형태의 프로야구 구장으로 문을 열었다. 돔구장으로는 부지가 협소한 곳에 지어져 관중들이 갖가지 불편을 겪고 있고, 교통·주차 대책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야구장 건립 과정에서 야구계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세워지고 있는 돔구장

[고척돔, 2713억짜리 날림 설계]

◇부지 선정부터 잘못됐다

야구계에서는 부지 선정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척돔이 들어선 지역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체육시설 건립 부지로 검토했던 곳이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고 학교도 4곳이나 있어 아마추어 야구장은 몰라도, 대형 돔구장이 들어서기에는 어려운 입지였다.

부지 면적도 돔구장을 짓기에는 작다. 고척돔의 부지 면적은 5만7261㎡로 도쿄돔(11만2456㎡)의 절반, 오사카돔(15만6400㎡)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이러다 보니 주차장이나 편의점 등 관중 편의와 직결된 시설이 들어설 공간이 부족하다. 좌석 간격이 좁고, 일부는 관중석 경사도가 35도에 이르는 것도 전체 면적이 좁아서 벌어진 일이다. KBO 관계자는 "관중석 수도 도쿄돔(5만5000석)의 3분의 1 수준인 1만8000석으로 국제 대회 유치 등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턱없이 부족한 교통 대책

오세훈 시장의 뒤를 이은 박원순 시장은 2013년 고척돔을 프로구단이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은 돔구장을 아마추어 야구용으로만 쓰기에는 아깝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교통 대책이 부족해 교통 대란 우려가 나온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면 하루 최대 1만8000명의 관중이 고척돔 주변에 몰린다. 고척돔 주변은 평소에도 교통이 혼잡한 곳이어서 주중 야간 경기와 퇴근 시간이 겹치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고척교를 왕복 8차선에서 10차선으로 넓혔고, 내년 3월까지는 1호선 구일역에 고척돔 방향으로 가는 출구도 새로 내기로 했다. 또 1km 반경 내의 유통상가·대형마트 등과 협의해 9000대 규모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에도 최근 고척돔에서 열린 고교야구 경기를 보러온 사람들은 극심한 교통 체증을 겪었다.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는 "인근 상가 주차장을 이용한다 해도 차를 세우고 15분 정도를 걸어 구장으로 가야 한다"며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구계·전문가 의견 수렴도 소홀

서울시는 2009년4월 돔구장 건설을 결정했지만 이후 야구계 의견 수렴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 경기장 설계 전문업체 로세티에 자문한 것도 공정이 절반 이상 진행된 작년 6월 시점에서였다. 허구연 KBO(한국야구위원회) 야구발전위원장은 "일반 야구장에 돔을 씌운다고 돔구장이 되는 게 아니다"며 "서울시가 돔구장 건설 과정에서 야구 전문가들에게 적극 의견을 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담당자들의 전문성 문제도 제기된다. 고척돔이 착공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 실·국장급은 4번, 과장급 실무진은 6번이나 바뀌었다. 야구장 운영도 잠실야구장과 목동야구장을 관리하는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아닌 서울시설공단에 맡겼다. 서울시설공단은 청계천, 어린이대공원 등을 주로 관리한다. 체육시설 운영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돔구장은 낯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내부 경쟁을 통해 운영을 맡게 된 것"이라고 했다.

"소음민원" "베이징金" "프로야구 인기" 설계변경 이유도 가지가지

8번 바꾸니 공사비 7배로

아마추어 구장에서 프로 구장으로, 일반 구장에서 돔구장으로 변경되면서 고척돔은 총 8번에 걸친 설계 변화를 겪었다.

서울시가 구로구 고척동에 동대문야구장을 대체할 아마 야구장을 건설하기로 했던 2007년 3월 당시 고척동 야구장은 일반 실외(室外) 구장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야구장에서 발생할 소음과 조명 공해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자 지붕을 반쯤 덮는 하프돔을 짓는 것으로 바꿨다. 2007년 8월 서울시는 6각형 절반 형태의 하프돔 개념도를 내놓았다. 이후 선정된 설계·시공사는 2009년 2월 유선형 하프돔으로 된 조감도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2개월 뒤인 그해 4월 돌연 하프돔을 완전 돔으로 다시 바꾸기로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등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계획을 또 한 번 변경한 것이다.

당시 돔을 위에서 잡아당기는 마스트 방식, 공기를 불어넣는 에어돔 방식 등 네 가지 안이 등장했다. 5개월 후인 그해 9월 시는 철골 등으로 얽은 지붕을 뚜껑처럼 얹는 방식으로 최종 확정했다.

2013년 고척돔을 아마추어 구장에서 프로 구장으로 변경하면서도 수차례 설계 변경이 있었다. 관중 숫자가 크게 늘어나는 데다 프로야구 경기 진행을 위한 내부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3년 8월과 2014년 6월 등 두 차례에 걸쳐 시설 개선 작업이 진행됐다.

이처럼 충분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행정의 대가는 컸다. 8차례나 설계를 변경하고 교통 개선 대책 등을 추가로 마련하느라 당초 예산 408억원의 약 7배에 이르는 총 2713억원의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고도 '날림 설계' '21세기 최악의 돔구장'이라는 악평을 듣고 있다.

/김효인 기자·최희명 기자

고척돔, 27년前 지어진 도쿄돔보다도 못해

한국 야구대표팀이 일본과 '프리미어12' 조별 예선 첫 경기를 치른 일본의 삿포로돔은 2001년 개장했다. 수용 인원이 5만4000여명으로 고척스카이돔(1만8000명)의 3배에 달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1998년 착공해 2001년 완공한 삿포로돔은 토지 비용을 뺀 건설비가 422억엔(약 3900억원)이었다. 약 2700억원을 들인 고척돔보다 비용은 1200억원 더 들었지만 그 규모와 용도, 편의성 면에선 비교가 안 된다. 삿포로돔이 '명품'이라면 고척돔은 '짝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삿포로돔은 후쿠즈미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좋고, 편의시설도 잘돼 있다. 층마다 TV 모니터가 설치된 넓은 홀이 마련돼 있어 자리를 떠도 야구를 즐길 수 있다. 내부 색깔이 짙은 톤이어서 공도 잘 보이고, 앞뒤 의자 간격이 넓어 불편함도 거의 못 느낀다. 야구는 인조잔디에서 치르며, 축구 경기를 할 때는 밖에 준비된 천연잔디 그라운드가 자동적으로 이동해 들어오는 첨단 설계 방식으로 건축됐다.

고척스카이돔은 1988년 3월 개장한 일본 최초의 돔구장 도쿄돔과 비교해도 낯 뜨거운 수준이다. 돔 지붕이 계란을 닮아 '빅 에그'라고 불리는 도쿄돔은 돔을 가압 공기로 부풀린다. 바로 옆에 놀이공원이 있고, 쇼핑몰과 레스토랑, 호텔, 온천 등 각종 편의시설이 위치해 도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됐다. 돔 근처에 지하철 역이 3개나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도 좋다.

미국에서 가장 최근 지어진 돔구장은 2012년 개장한 마이애미의 말린스파크다. 돔이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지붕이 열리는 개폐식이므로 선수들 부상 위험이 적은 천연잔디가 깔려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구장으로 평가받는다. 허구연 KBO 발전위원장은 "최근엔 천장 개폐식 돔이 주류인데, 고척돔은 편의성뿐 아니라 스타일도 뒤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강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