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문화마을에 가구 공방 갖춘 협소주택 '우주제작소'
부산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은 가파른 산자락을 따라 오래된 판잣집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마을의 기원이다. 옛날식 판잣집이 곳곳에 남아있고, 집 사이 사이로 미로 같은 좁을 골목길이 나있다.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도록 계단식으로 지어져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대부분 집에서 마을 전경과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부산시가 이곳에 벽화마을을 조성하자 예술가, 건축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감천문화마을은 관광명소다.
가구 디자이너 김대영(33)씨도 2년전 감천문화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김씨는 자신의 공방으로 쓸 독립적인 공간을 찾기 위해 감천문화마을 낡은 주택을 샀다. 건축면적 약 9평, 연면적 19평의 2층짜리 판잣집이다. 1층과 2층이 70도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작은 집이다.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어 창 밖으로 항구와 바다가 보인다.
지난 2013년 당시 주택 매입비는 단돈 800만원. 올 여름 기준 전국 민간 아파트 분양가격이 3.3㎡(평)당 867만 8000원이다. 말하자면 아파트 1평보다 더 싼 값에 집 한 채를 매입한 것이다. 감천문화마을의 집들은 몇 년 전까지 상하수도, 전기, 난방 등 주민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많았다. 김씨의 집도 샤워실은 있지만 화장실은 건물 밖에 있는 마을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물론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주택들이 모두 이렇게 편의 시설이 부족하고 매매가격이 낮은 것은 아니다. 차도와 가까운 곳에 있는 주택은 1~2억원 짜리도 있다.
건축주 김씨가 노후한 2층짜리 주택을 매입해 수리하는데 든 돈은 약 1500만원. 전기, 타일과 창호 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공사는 건축주가 직접 했다. 김씨는 대학시절 건축을 전공하고 호주에서 목수 자격증을 따, 웬만한 보수 공사는 직접 해결했다. 건물 외관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고 벽체를 보강하고 바닥을 수리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김씨가 매입하기 전에는 두 가구가 살았다. 1층은 주인집, 그리고 2층은 세입자가 살던 곳이었다. 김씨는 1층의 안방과 주방을 분리하던 벽체를 철거하고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본인의 공방 겸 작업실로 쓴다. 집 자체가 넓지 않아 동선도 짧다. 1층 출입구로 들어가면 김씨의 공방이 나오고 계단으로 오르면 2층 발코니와 함께 안방 겸 서재가 나온다. 1층과 2층은 사람이 계단에 손을 대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두발이 아니라 네발로 기어오르는 꼴이다. 감천문화마을 자체가 계단식 경사지라서, 이곳에 있는 집들은 실내에 있는 계단도 매우 좁고 가파르다.
2층은 평소엔 김씨의 안방 겸 서재로 쓴다. 또 가끔 외국인 손님들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이른바 게스트하우스다. 김씨는 “주택 매입 당시 게스트하우스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2층에 작품을 직접 전시하기 시작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2층은 1층과 출입구가 따로따로다.
2층은 대대적인 바닥 수리를 거치고 벽체에 단열재를 덧댔다. 감천문화마을 규제 때문에 증축은 안되지만 천장을 넓게 쓰기 위해 안방의 바닥 높이를 낮췄다. 덕분에 안방과 복도 간의 바닥 높이 차이가 생겼다. 김씨는 높은 마루를 의자처럼 쓴다. 엉덩이는 복도에 발은 안방에 있는 형태다. 복도가 대형 의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안방 옆에 달린 창호 문을 열면 서재가 나온다. 2층 서재 바닥에는 나무를 나란히 깔았다. 밤에는 1층 작업실에서 2층 나무 바닥 사이로 빛이 은은하게 올라와 색다른 느낌이 난다. 집안 곳곳에는 김씨가 가구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쓰는 나무 재료들이 전시회장에 있는 한 점의 작품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벽에 있는 나무로 된 장식품이나 안방에 있는 나무 의자도 김씨의 작품이다. 서재에도 양묘장에서 가져온 나무를 가져다 놓아 차분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기존 집에 있던 타일이나 창호 역시 보존해 옛 한옥에 들어와있는 느낌을 준다. 김씨는 “옛 것을 배척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과거와 현재 모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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