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반기 배럴당 100달러 넘던 유가…우유·콜라값보다 싸져
'15달러'에 베팅하는 투기세력 등장
WTI 가격, 종가 기준 5년 만에 브렌트유 앞질러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배럴 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유가가 연이어 하락하며 우유·콜라값보다도 싸졌다. 1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한때 ‘검은 황금’으로 떠오르며 부(富)의 상징이 됐던 석유가 지금은 ‘검은 눈물’로 전락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내년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된 데다가 석유의 공급 과잉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가 하락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내년 유가 전망을 배럴 당 20달러대로 제시했고, 시장에서는 배럴 당 15달러에 베팅하는 투기 세력도 등장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11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원유의 공급과잉이 계속되며 유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브렌트유 11년만에 최저수준 하락…강달러·공급과잉이 발목

22(현지시각) 런던ICE거래소에서 브렌트유 2월 인도분 가격은 전장 대비 24센트(0.7%) 떨어진 배럴 당 36.11달러에 마감했다. 장중 배럴 당 35.98달러까지 밀렸는데, 이는 2004년 7월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33센트(0.9%) 오른 배럴 당 36.14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7년 저점으로 가격이 하락하자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며 이날 소폭 올랐다. WTI가 오르면서 가격이 브렌트유보다 비싸졌는데, 마감가 기준 이러한 역전 현상은 2010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장중 기준으로는 지난 1월에도 WTI 가격이 브렌트를 앞선 바 있다.

유가를 결정짓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통화와 공급량이다. '달러 강세→유가 하락'이라는 인플레이션 공식대로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의 절상 압력으로 작용, 유가의 추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준)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내년 한해 동안 금리를 4번 인상할 것임을 시사했다.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표시한 자료)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의 내년도 금리 예상치 평균은 1.4%다. 블룸버그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내년 1~3월 사이 25bp, 3분기에 25bp, 4분기 25bp 2017년 1분기 25bp 금리가 추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됐다.

공급 과잉 문제도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40년 만에 원유 수출 금지가 풀린 미국과 핵 협상 타결로 제재가 풀린 원유 매장량 세계 4위 이란의 원유 수출이 확대되는 데다가 주요 산유국이 산유량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ㅡ점유율 확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기구(OPEC) 내 30% 이상의 원유를 생산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더십과 감산 불가 의지가 여전히 강력하다.

영국 바클레이즈는 보고서에서 “하루 초과 공급량이 저장 용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고 있다”면서 “2016년까지 공급 과잉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산유량이 예상을 초과할 것"이라면서 내년 국제 유가가 배럴 당 20달러 선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내년 유가가 배럴 당 15달러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에 베팅하는 원유 풋옵션 계약에도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옵션은 미리 정한 시기와 가격에 상품을 팔 수 있는 권리로 풋옵션은 판매 가격이 정한 가격보다 낮아질수록 이익을 보는 상품이다.

◆산유국發 경기침체 확대…사우디 페그제 포기해야

통상 유가 하락은 교역조건을 개선시키기 때문에 원자재 소비국인 선진국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기 진작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선진국은 재정긴축, 중국은 그림자금융(예금자보호가 어려운 비제도권 금융)과 지방정부 채무 조정 등으로 수요 진작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오히려 유가 급락은 자원 수출국의 경기 침체를 통해 세계 경제 수요의 둔화라는 피해를 부각시키고 있다. 자원 수출국 위기는 초기에 러시아, 브라질에 이어 인도네시아를 거쳐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미국 투자회사 컨버젝스(ConvergEx) 그룹이 올초 306명의 투자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28%는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질 때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사우디는 재정의 대부분을 석유부문에서 충당하고 있는데, 유가 급락으로 막대한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재정적자의 재원은 외채와 외환보유액이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이 이르면 2018~2019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증권은 “사우디가 재정긴축이나 달러페그제(자국 통화 가치를 고정된 달러에 묶어 두고 정해진 환율로 교환을 약속한 환율 제도)를 포기해야 한다”며 “하지만 재정긴축은 중동발 경기침체를 의미하고 페그제 포기는 신흥국 통화의 경쟁적 약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