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식당 대표메뉴 '짜장면'으로 변신한 산둥 '자장몐'
옌타이 종합버스터미널 주변에는 밤이면 노점 식당들이 활기를 찾는다. 주로 파는 메뉴는 꼬치구이와 자장몐(炸醬麵), 차오몐(炒麵)을 비롯한 면요리들이다. 이 중 자장몐은 한국 짜장면의 원조다. 옌타이의 식당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메뉴다. 자장몐 한 그릇을 시켰다.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다. 기름에 볶은 몐장(麵醬·중국 된장)과 오이 같은 간단한 야채만을 면 위에 올려준다. 짜장면에 비해 짠맛이 강하고 뻑뻑해 한국인 입에는 썩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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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의 자장몐이 한국으로 건너와 짜장면이 된 건 혼란스러운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2년 조정의 개화정책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가 변란을 일으킨 임오군란이 터졌다. 중국 청나라가 조선을 돕는다는 구실로 군대를 파견했다. 군인을 따라 상인이 들어왔고, 인천에 정착했다. 이들 중 산둥 출신이 가장 많았다. 이들과 함께 자장몐이 들어와 팔리기 시작했다.
중국이 공산화되자 중식 재료를 본토에서 가져오기가 불가능해졌다. 자장몐의 주재료인 몐장도 마찬가지였다. 화교들은 한국에서 직접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이들이 담근 몐장은 춘장(春醬)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산둥 사람들은 몐장을 생 대파에 찍어 먹는다. 그래서 총장(蔥醬)으로 불렀는데 이를 화교들이 춘장으로 발음하면서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때까지 춘장은 산둥의 몐장과 비슷했다. 짠맛이 강했다. 그러다 1948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인천 영화식품에서 춘장에 캐러멜을 섞은 것. 캐러멜이 더해진 춘장은 단맛이 돌면서 훨씬 부드러워졌다. 한국인 입맛에 훨씬 잘 맞았다. 여기에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고 배달을 위해 보온력을 좋게 하기 위해 물전분(물에 푼 전분가루)을 넣으면서 짜장 소스가 걸쭉해졌다.
옌타이 시내 여러 지점을 둔 식당 '푸산다랑몐관(福山大娘面館)'에서 일반 국숫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자장몐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만든 자장몐은 한국식 짜장면과 흡사하게 물전분을 마지막에 처리해 걸쭉하다. 항정살을 이용해서 돼지 기름을 뽑아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요리사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의 자장몐은 이런 '습식(濕式)'과 거리에서 파는 '건식(乾式)'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왕유성, 여경래 같은 전·현직 한국중화요리협회 회장들은 물전분을 넣은 습식 자장몐은 한국에서 역수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 셰프는 "30년간 중국을 오갔지만 습식 자장몐은 본 적이 없다. 자장몐은 몐장과 다양한 꾸미를 비벼 먹는 일종의 비빔면"이라고 말했다.
옌타이 시내에는 한국식 짜짱면을 파는 식당들도 있다. 한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현지의 젊은이들도 걸쭉하고 달달한 한국식 짜장면을 즐겨 먹는다.
◇잡채·순대의 핵심 재료가 된 당면
잡채, 순대 등에 사용되며 잔칫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된 당면(唐麵)도 산둥에서 유래했다. 당면은 '중국 국수'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당면이란 말 자체가 없다. 대개는 '펀쓰(粉絲)'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실(絲)처럼 가늘다는 의미다. 펀쓰로 통칭하지만 여러 종류가 있다. 소면보다 조금 더 굵은 한국의 당면을 산둥에선 '펀탸오(粉條)'라고 부른다. 납작면처럼 넓은 것은 '펀피(粉皮)'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펀쓰는 산둥성 자오위안(招遠)에서 300여 년 전 발명됐다"고 이야기한다. 자오위안은 예나 지금이나 펀쓰의 본향(本鄕)이다. 산둥진청그룹(山東金城股份有限公司)은 자오위안에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펀쓰 공장을 가동 중이다. 펀쓰는 완두나 녹두, 고구마 전분을 이용해 만든다. 요즘은 녹두와 고구마 전분을 주로 쓴다. 물과 전분을 잘 섞는 것이 핵심 공정이다. 두 번 섞으면서 공기를 빼고 균일하게 섞는다. 잘 섞은 반죽을 기계에 넣어 가늘게 빼내면서 익힌다. 냉동실에 하루 식힌 후 찬물로 해동한 뒤 1시간 건조시키면 펀쓰가 완성된다.
산둥진청그룹이 운영하는 자오위안진청온천대주점(招遠金城溫泉大酒店) 연회장에서 새우와 간장에 무친 펀쓰를 맛봤다. 얇고 매끄럽다. 새우의 감칠맛과 간장의 짭짤한 맛을 받아들인 펀쓰는 얇고 매끄러운 식감과 맛이 일품이다. 산둥진청그룹 리쥔(李軍) 사장은 "녹두는 찬 성분이 많아서 더위를 없애준다"며 "여름에는 녹두로 만든 펀쓰를 먹으면 더위를 잡을 수 있고, 겨울에는 더운 기운이 있는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펀쓰를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1880년 쓰인 '한불자전(韓佛字典)'에 당면이 처음 등장하는 것을 보면 19세기 중반 이후 당면이 한반도에서 사용됐음이 분명하다. 1920년 사리원에 당면 공장인 광흥공창이 세워지면서 중국인은 물론 한국사람들도 즐겨 먹는 식재료가 된다. 1924년에 쓰인 '조선요리제법'에는 당면을 이용한 잡채와 냉면이 등장한다. 1930년대 신문에는 중국식당에서 잡채나 탕수육을 시켜 먹는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산둥에는 펀쓰를 이용한 요리가 수십 가지나 된다. 반면 한국의 중식당에는 당면을 이용한 요리가 잡채밥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서울 서교동 '진진' 오너셰프 왕육성씨는 "1960년대 들어 일반 가정에서 당면을 이용한 잡채를 즐겨 먹게 되었고, 이후 중국집을 찾는 손님들은 당면 요리를 별로 찾지 않아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교들은 집에서 납작 당면을 국물 요리에 넣어 즐겨 먹는다.
◇공짜 서비스음식으로 전락한 물만두·군만두
한국에 큰 영향을 준 산둥 음식으로 만두를 빼놓을 수 없다. 정확하게는 교자(餃子)다. 중국에선 속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이스트를 넣어 부풀린 우리의 찐빵을 만터우(饅頭)라고 부른다. 우리가 만두라 부르는 음식은 자오쯔(餃子)다. 산둥에서 교자만두는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교자를 빚을 때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모습이 마치 부탁하는 모습과 같아서 그렇다고 한다. 물에 끓인 수교자(水餃子) 즉 물만두로 주로 먹는다. 부추나 돼지고기뿐 아니라 오이, 새우, 개불 같은 독특한 해산물을 넣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옌타이 판자위안자오쯔관(潘家園餃子館)은 작은 교자 전문점이지만 맛은 정평이 나 있다. 여기서 맛본 산둥 교자는 한국의 중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크고 피가 두툼했다. 한 끼 식사로 많이 먹기 때문이다. 한국 중식당의 물만두는 식사보다는 요리로 발전하면서 크기가 작아졌다.
군만두인 궈톄자오쯔(鍋貼餃子)도 있지만 대개 삶아 먹는다. 궈톄는 만주와 요동반도를 점령했던 일본 관동군에게 전해져 일본에서 야키만두로 발전한다. 야키만두는 일본화된 만두로 지금 우리가 먹는 군만두는 상당부분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일본화된 중식 문화 중 하나다.
물만두와 군만두는1980년대 이후 요리로 팔리게 된다. 냉동 만두가 등장해 집에서 저렴한 가격에 만두를 먹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탕수육이나 팔보채 같은 요리를 시키면 내놓는 서비스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러나 최근 서울 연희동 일대 중식당에서는 산둥식 물만두가 중식 붐을 타고 각광받고 있다.
◇루차이와 한국의 중화요리
산둥요리는 루차이(魯菜)라 부른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산둥에 있던 노(魯)나라에서 따온 말이다. '양자강(揚子江)을 중심으로 중국을 남북으로 나눌 때 북방에는 루차이만 있고 남쪽에는 광둥·쓰촨·상하이 요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수도 베이징을 포함 북쪽의 요리는 루차이에 기반하고 있다.
건륭제(乾隆帝·1735~1796년) 이후 1911년 청황실이 공식적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황실 주방은 산둥성 푸산현(福山縣) 출신들의 독무대였다. 2009년 후진타오 주석이 옌타이를 방문했을 때 음식 설명을 하기도 했던 산둥음식 권위자 천쉐전(陳學眞) 산둥성성시복무기술학원(山東省城市服務技術學院) 교수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건륭황제는 푸산 출신이던 주방장을 총애했다. 그가 은퇴 후 고향으로 은퇴했다. 황제가 병에 걸리자 그가 만든 음식을 너무 먹고 싶어 했다. 그러자 황후가 푸산에 와서 사정했고, 주방장은 황궁으로 돌아갔다. 이후 푸산 출신이 황실 주방을 독점하게 됐다."
푸산에는 300여 요리사 가문이 있었다고 한다. 청이 망한 뒤 이들 중 80~90여 명이 한반도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한성화교협회 회장 출신인 진유광씨가 1983년 쓴 '중국인 디아스포라'란 책에 따르면, 서울의 유명 중식당이던 아서원 이병과(李秉科)란 푸산 출신의 주방장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요리사였다고 한다. 또한 오늘날 한국의 대형 중식당 주방장은 이병과씨의 직계 제자이거나 2~3대를 거친 후계자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천쉐전 교수는 "루차이의 5대 요소는 맛, 향, 형태, 접시, 영양"이라고 꼽았다. "1949년 공산정권 수립 후 다른 지역 요리와 마찬가지로 루차이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에 고급 음식이 많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요리사들이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로 전통을 복원했습니다. 전통을 복원했을 뿐 아니라 새롭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트뤼프(송로버섯), 푸아그라(거위 간) 등 서양 식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루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서울 '홍보각'과 '루이'를 운영하는 오너셰프 여경래씨는 한국중국요리협회 회장과 세계중국요리연합회 부회장을 맡고 있어 한국은 물론 중국과 전 세계로 퍼진 중식의 흐름에 밝다. 여 셰프는 "한국의 중국음식은 루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한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 변화하면서 루차이와는 크게 달라졌다"며 "'한중채(韓中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독자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한국 손님들은 기름이 적고 간이 세지 않아야 좋아합니다. 매운맛, 국물음식, 탕수육 같은 튀김을 유난히 선호하고요. 산둥에서 출발한 한국의 중식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어요. 중화요리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중식은 산둥요리를 기반으로 광둥(廣東)과 쓰촨(四川)요리가 가미한 스타일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산둥요리 '루차이'를 만나
산둥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면요리는 자장몐이 아닌 푸산다몐(福山大麵)이다. 역사가 500년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가늘고 차진 면발에 국물이 걸쭉하다. 한국 중식당에서 파는 울면과 비슷하다.
말린 도미를 갈아 넣는 것이 육수 맛의 핵심이다. 반건조 생선의 감칠맛이 물전분으로 걸쭉해진 국물을 깊고 그윽하게 만든다. 국수 반죽은 밀가루에 소금만 넣어 만든다. 산둥사람들은 "소금은 면의 뼈에 해당한다"며 소금을 면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긴다. 수확 후 도정하지 않고 1년 묵혀둔 밀을 사용해야 최상의 면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옌타이 진싼환시장(近三環農貿市場) 앞 '푸산라몐관(福山拉面館)'은 푸산다몐 전문점이다.
펑라이(蓬萊)의 펑라이샤오몐(蓬萊小面)은 푸산다몐과 맛은 같지만 국수가 적고 국물이 많다는 점만 다르다. 그 유래는 다몐을 파는 식당에 손님 여섯이 왔는데, 국수는 3인분만 남아 있었단다. 궁리 끝에 3인분을 나눠 6그릇에 담고, 모자란 만큼 국물로 채웠다고 한다.
펑라이에 있는 '젠싱판뎬(建興飯店)'은 오전부터 긴 줄이 서는 맛집. 펑라이샤오몐도 맛있지만 하이선탕(海參湯)을 추천한다. 얇은 면발에 해삼이 통으로 올려져 나온다. 전분을 풀어 걸쭉하면서도 따뜻한 국물이 속을 부드럽게 하고, 얇은 면발은 목 넘김이 좋다.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푸산다랑몐관(福山大娘面館): 푸산다몐. 주소 烟台 福山區 崇文街90-2-3號(烟台崇文中學)
■가오산차자창차이관(高山茶家常菜館): 생선찜, 개불만두. 烟台 芝還區 勝利路224號
■판자위안자오쯔관(潘家園餃子館): 물만두. 烟台 芝還區 勝利路 永和豆漿旁
■푸산라몐관(福山拉面館): 푸산다몐, 자장몐. 烟台 芝還區 南通路
■젠싱판뎬(建興飯店): 펑라이샤오몐. 蓬萊市 南關路124號(近建設管理局)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는 '정통 산둥음식'
정통 산둥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중식당이 서울 연남·서교동 일대를 중심으로 차츰 늘고 있다. 서교동 '진진'이 대표적이다. 마의상수( 蟻上樹)는 산둥 자오위안(招遠)에서 생산된 굵고 쫄깃한 '펀피(粉皮)' 당면에 간 소고기와 잘게 썬 마늘종·양파를 넣고 볶은 요리다.
당면을 집어들면 고기와 마늘종, 양파가 당면에 다닥다닥 붙은 채 딸려 올라온다. 그 모습이 마치 개미( 蟻)가 나무를 오르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진과 연남동 '진가'에서는 샤오지(燒鷄)를 맛볼 수 있다. 닭을 쪄서 간장에 조린 뒤 식혀 먹는 냉채로 산둥에서는 잔치 때 빠지지 않는다.
피가 도톰하고 물에 삶아 먹는 산둥식 만두는 연남동 '편의방'이 잘한다. 생선 살로 속을 채운 어만두를 특히 추천한다. 한국식 중화요리를 잘하는 식당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런 식당은 대개 오래된 동네 구석에 숨은 듯 자리 잡고 있으며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보문동 '안동반점'은 잡채와 잡채밥을 옛날식으로 맛있게 내는 드문 중식당이다.
신공덕동 '신성각'은 물 전분을 거의 넣지 않아 빡빡한 짜장 소스가 옛날 짜장면 맛이 난다. 마포동 '현래장'은 수타면으로 이름났다.
■신성각: 서울 마포구 임정로 55-1 (02)716-1210
■안동반점: 서울 성북구 인촌로1길 8 (02)923-4448
■진가: 서울 마포구 동교로34길 12 (02)326-1668
■진진: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123 (070)5035-8878
■편의방: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36 (02)363-5887
■현래장: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 20 (02)71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