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고문은 12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주승용(전남 여수), 장병완(광주 남구) 의원이 13일 탈당하고 다음 주에는 박지원(전남 목포) 의원과 이윤석(전남 무안·신안), 김영록(전남 해남·완도·진도) 의원 등 전남 의원들이 탈당 대열에 합류한다. 정대철 고문 등 40여 명도 주말에 더민주를 떠난다. 이렇게 되면 광주·전남의 야당 의원 18명 중 4명만 더민주에 남게 된다. 호남 야당 의원들의 탈당은 야권의 기반인 '호남+운동권' 연합 중 호남 축의 붕괴이자,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손을 잡고 연합해 정권을 잡았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세력의 결별을 의미한다.
◇DJ·盧 세력의 결별
이날 탈당한 인사는 권 고문을 비롯해 김옥두, 남궁진, 이훈평, 박양수 전 의원 등 10여 명이다. 전직 시도의원 등 100여 명도 이날 권 고문과 함께 탈당했다. DJ 가신(家臣)으로도 불렸던 이들은 DJ의 '이념적 파트너'라기보다 지역과 의리로 뭉친 '운명 공동체'였다.
[권노갑 더민주 탈당, "참담한 마음"으로 탈당 선언]
권 고문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통합과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했지만 그토록 몸 바쳐 지켰던 당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며 "60년 정치인생 처음으로 몸담았던 당을 스스로 떠난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저에게는 없다"고 말했다. 권 고문은 원래 기자회견문에 '친노(親盧) 패권'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 기자회견장에선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권 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국민의당'에 합류하지 않고 '제3지대'에서 천정배, 박주선 의원, 박준영 전(前) 전남지사 등이 추진하는 신당을 포함해 비노(非盧) 통합 작업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표는 권 고문의 상징성 때문에 끝까지 탈당을 만류했었다.
정치 현장에서 이미 은퇴한 권 고문과 동교동계의 탈당은 정치적 영향력보다는 DJ 세력의 이탈이라는 '상징성'에 있어 야권(野圈)에 큰 파급력을 갖고 있다. 원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관계는 호남 출신인 김 전 대통령이 주(主), 부산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객(客)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 이듬해인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합민주당에 참여하며 정치적 인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25년 후인 2016년에는 DJ 후예인 동교동계와 호남이 노 전 대통령의 후예인 친노(親盧)와 운동권에 안방을 내주며 당을 떠나는, 세력과 지역의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25년에 걸친 양측의 애증
김 전 대통령은 생전 노 전 대통령과 운동권 인사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1997년 대선 직전인 11월,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인사들이 자신을 지지하며 국민회의에 입당하자 "오늘처럼 기쁘고 마음의 짐을 내려 안도하기는 처음이다. 정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 전 대통령이 1995년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전근대적 정치"라며 통추를 만들고 잠시 결별했었다. DJ 세력의 지원 속에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양 세력은 대북송금 특검, 민주당 분당, 탄핵 등으로 멀어졌지만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 다시 통합했다. 그러나 작년 새정치연합 당 대표 선거 때 문재인과 박지원이라는 양측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맞붙었고, 그 결과 문 대표가 당선되면서 힘의 균형은 친노 쪽으로 기울었다.
동교동계 이탈 이후 야권 적통(嫡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동교동계는 자신들의 적통성을 주장하지만, 친노 측은 "아직 더민주에는 DJ의 정신을 계승하는 인물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더민주에 남아 있는 이해찬, 정세균, 추미애 의원 및 이인영, 우상호 의원 등은 DJ가 '재야 영입' '젊은 피' '전문가' 등의 이름으로 발탁해 성장시킨 인물들이지만 동교동계처럼 DJ 직계로 보긴 어렵다. 김 전 대통령이 영입해 성장시켰던 정동영, 천정배 전 의원 등은 먼저 야당을 떠났다.
정당의 이념적 성향도 논란이다. 김 전 대통령은 97년 '통추' 소속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자 "JP에 이어 통추와 손을 잡게 되면서 보수와 개혁 양 날개를 튼튼히 해 중도 정당의 모습을 견고히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중도 정당'이라는 용어는 지금 더민주보다는 '국민의당'에서 자신들의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