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으면 뭐 먹고살지?" A씨의 이 말이 극단을 암시했다는 걸 그때 아내는 몰랐다. 사교적이었던 A씨는 6개월 전부터 동창회에 발길을 끊었고 석 달 전 입맛도 잃었다. 동네병원 내과 의사가 내린 판정은 '만성피로증후군 의심'. 이 40대 가장은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고 연신 "고맙다"고 한 지 이틀 후, 출근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건복지부는 자살 사망자의 93.4%가 언어·행동·정서적 변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경고 신호를 보냈지만, 유가족의 81%가 이런 자살 징후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자살 사망자가 10명이라면 신호를 보내지 않는 사람은 1명이 채 안 되지만, 가족·친지 중 이를 눈치채는 사람은 2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2~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세 이상 121명에 대해 그들의 가족·친지 151명과의 면담을 토대로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을 실시해 26일 처음 공개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자살 징후를 빨리 포착해 대처 요령을 지킨다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최고 자살률은 우리 삶의 현실이자 부끄러움이며 자살 예방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한다"고 김현수 심리부검센터장(서남대 명지병원 교수)은 말했다.
◇침울해진 사람의 SOS 경청해야
심리부검 결과, 가족·친구·동료에게 보낸 자살자의 경고 신호는 크게 세 가지로 ▲언어("내가 먼저 갈 테니 잘 지내" 같은 직접적 언급, "천국은 어떤 곳일까'처럼 사후세계 동경) ▲행동(불면, 식욕·체중 변화, 신변 정리, 죽음과 연관된 작품·보도에 과몰입 등) ▲정서(갑작스러운 눈물, 과묵해짐, 무기력, 대인 기피)상의 변화였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는 일반인이 이 같은 주변 자살 시도자의 복선을 감지했을 때 단계별 대처법을 '경청'과 '전문가와 상담 유도'로 요약했다. 자살은 자존감이 바닥일 때 떠올리게 되고 이는 타인과 관계에서 주로 나타나므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는 것만으로 파국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무시) "다 잘될 거야"(근거 없는 낙관) 같은 반응은 금기다. "자살 동호회에 가입하겠다"는 등 더 구체적인 언행을 파악했다면 위태로운 이를 혼자 위험 상황에 남겨두지 말고 그의 친지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윤 교수는 "국내에선 충동적 자살 비율이 높아, 주변 도움으로 고비를 넘기면 일시적 동요를 후회하면서 일상 기능을 회복할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우울증 치료 소홀도 원인
스스로 자살 유혹을 느끼는 이들 역시 두려움·수치심을 떨치고 가까운 이에게 고통을 말하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위험한 물건을 멀리해야 하는데, 술도 그중 하나다. 심리 부검 결과는 자살 위험자의 '음주 및 정신건강 관리'의 중요성도 환기시켰다. 자살자의 39.7%가 사망 당시 음주상태였고, 25.6%는 본인이 과다 음주에 따른 대인 관계 갈등 등 음주 관련 문제를 갖고 있었다. 자살자의 88%는 우울장애 등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를 꾸준히 치료를 받은 이의 비율은 15%였다. 자살 사망자의 28.1%에겐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던 가족이 있었다.
상담·문의, 중앙심리부검센터(02-555-1095), 보건복지부(1577-0199 또는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