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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유머로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일명 '아재 개그'가 떴다. 인터넷 속 외진 게시판에서나 출몰하던 철지난 난센스 개그와 언어 유희가 지상파TV와 케이블을 차례로 점령해가고 있다. 고집불통 '꼰대' 아저씨가 다정한 '아재'가 되는 순간 웃음이 터지는 마법이다.

시작은 MBC 예능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오세득 셰프였다. 그는 방송에서 시종일관 "양손으로 해야 양념" "대하(大蝦)철에는 대하(大河) 드라마를 틀죠" 같은 썰렁 멘트로 인기를 얻었다. 처음엔 '역시 아저씨'라며 흉을 봤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의 아재 개그에 세뇌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개그맨들도 가세했다. tvN 코미디 프로에서 신동엽이 29일 선보인 '아재 셜록'은 웃음을 자아냈다. 피해자 다이어리에서 '외롭다'는 단어를 본 신동엽은 "피해자는 싱글, 그러니까 범인의 이름은 벙글(싱글벙글)"이라며 진범을 붙잡는다. KBS 개그콘서트 '아재씨' 코너에서 박영진은 '아재 악령'으로 분했다. 10대 고등학생에게 빙의해 아재 개그를 펼치게 하는 역. '난닝구'를 입고 발가락 양말을 신은 박영진이 발가락 사이를 긁고 냄새를 맡는 장면에서 객석은 폭소를 터뜨렸다.

‘아재 개그’가 방송가를 점령했다. 신동엽(맨 위)은‘아재 셜록’에서 황당한 아재 개그식 추론으로 범인을잡고, 박영진(아래왼쪽)은‘아재씨’에서등산사진자랑하는아저씨들을풍자한다.‘ 마리텔’에 출연한 오세득 셰프는‘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라는 언어 유희로 아재 개그의 원조가 됐다.

아재 개그 VS 부장님 개그

아재 개그의 매력은 은근한 중독성이다. "내가 조금 뒤 이거(아재 개그) 때문에 웃을까 봐 겁나"라는 한 네티즌 말처럼 처음엔 어이없지만 되새길수록 웃음이 쿡쿡 터진다. '어묵 묵어(어묵 먹어)' 같은 말장난에 뜨악하다가도, '새우랑 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기게?' '새우는 깡이 있어서 고래는 밥이야' 같은 개그로 이어지다 보면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웃기지 않는 농담에 웃기 싫어서 어금니를 꽉 깨물어도 결국 터져나오는 웃음. 한 지상파 PD는 "아재 개그의 시초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익숙하고 간단한 언어 유희"라면서 "가끔 예상을 빗겨나 허를 찌르는 한마디가 재미를 준다"고 말했다.

'소통'이란 측면에서 아재 개그는 '부장님 개그'와 다르다. 썰렁하고 재미없다는 점에선 부장님 개그와 같지만 억지로 웃어주지 않아도 되고 "재미없다"고 그자리에서 면박줄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아재 개그는 권위적인 기성세대와 자유분방한 젊은이들 사이 벽을 허물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개그콘서트 박영진은 '아재씨' 코너를 시작하면서 "아저씨들과 젊은 세대 간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평소 기성세대에게 짓눌려 있던 젊은이들은 '아저씨'가 개그를 시도한 뒤 와장창 면박받는 모습에서 통쾌하게 웃는다. 아저씨들에게도 아재 개그는 매력 포인트다. 뭔가 허술하고 촌스럽지만 친근하고 유연한 이미지를 입기 때문이다. '코미디 빅리그'를 연출하는 박성재 PD는 "큰 재미가 없지만 썰렁 개그에 대한 주변 반응들이 이어지고 그것이 또 다른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아재 개그는 사람들 사이를 화기애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아재 개그'로 소통한다

아저씨는 한국 사회에서 공격의 대상이었다. '꼰대' '꼴통'처럼 중장년층 남성을 비하하는 말들이 인기를 누렸다. '쩍벌남(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주변에 피해를 주는 남자)' 같은 말도 가부장적 아저씨를 겨냥했다. 그러나 '아재', '아재 개그'는 다르다. 아저씨가 갖고 있던 부정적 어감이 느껴지지 않고 친근하다. 회사원 강양준(32)씨는 "아재 개그를 했을 때 주변에서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재밌고, 웃기지 않은 척 애써 참는 모습도 재밌다"면서 "큰웃음은 아니지만 주위에 소소한 웃음을 번지게 한다는 게 아재 개그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젠 20~30대 초반 남성들까지도 서로를 '아재'라 부른다. 아저씨는 부끄럽지만 아재는 부끄럽지 않아서다. 웃음을 강요하는 사람(부장님 개그)과 주위의 웃음을 갈구하는 사람(아재 개그)의 차이다. '아재 개그'로 한국 사회는 '아저씨'를 넉넉한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