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공천장 날인(捺印)을 둘러싼 지난 이틀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친박(親朴)계 최고위원 간 벼랑 끝 대치 때문에 후보 12명의 생사(生死)가 극과 극을 오갔다.
지난 24일 김 대표의 '옥새(玉璽) 투쟁' 선언으로 총선 후보자 등록 종료일인 25일까지 공천 여부가 불투명했던 새누리당 예비후보 6명 중 정종섭(대구 동갑)·추경호(대구 달성)·이인선(대구 수성을) 후보는 마감 시한 2시간 전인 이날 오후 4시 극적으로 공천장에 당 대표 '도장'을 받았다. 하지만 이재만(대구 동을)·유재길(서울 은평을)·유영하(서울 송파을) 후보는 받지 못해 아예 총선 출마가 불발됐다. 이에 따라 당 공천위에서 '컷오프(공천배제)'돼 탈당한 해당 지역구 6명의 무소속 후보들도 희비(喜悲)가 극명하게 갈렸다.
정종섭·추경호 후보의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과 국무조정실장을 한 인사들로 공천위가 단수(單數) 후보로 추천하면서 무난하게 공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두 후보는 각각 류성걸 의원, 구성재 후보에게 여론조사상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 경선을 치를 경우 고전(苦戰)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공천위의 단수 추천 결정으로 국회 입성(入城)이 가까워진 상태였다. 여권의 텃밭인 대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는 '강자(强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가 24일 이들의 지역구를 5개 '불(不)공천'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흥분한 이들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대표의 결정은 대의정치와 정당정치의 기반을 부정하고 참정권을 침해하는 헌법 위반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이날 오후 김 대표와 친박계 최고위원 간 타협이 이뤄지면서 기사회생(起死回生)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공천장을 받은 직후에도 "김 대표의 일부 지역구 '불공천'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경북 경제부지사를 지낸 이인선 후보의 경우 23일 최고위 추인까지 받았지만,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주호영 의원이 낸 공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며 공천장 효력이 사라졌다. 공천위는 이날 오전 이 후보에 대해 공천 절차를 다시 진행했지만, 김 대표는 "당헌·당규에 어긋나는 과정"이라며 추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이는 번복됐고 결국 공천장을 받게 됐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추 후보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 이 후보에 대해서도 최고위 추인을 마쳤으니 끝까지 막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고 했다.
이재만·유재길 후보는 이른바 '진박(眞朴)' 인사로 분류되지도 않는데 이번 파동으로 총선 출마 자체가 봉쇄돼 '계파 갈등의 최대 피해자'로 불린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과 맞섰던 대구 동구청장 출신 이 후보는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이 상승 추세에 있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유권자 앞에 설 기회를 박탈당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에서 90년대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한 인사로 주목받았던 유재길 후보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유 후보는 국민의당 유성엽(전북 정읍) 의원의 동생으로 본선에서 의외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두 사람은 공천 탈락이 최종 확정된 뒤, 당사를 찾아와 항의했다. 이 후보는 "김 대표가 설마 이런 식으로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정말 분하다"고 했다. 유 후보는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공천위 단수 추천을 받았는데 당 대표가 출마를 못하게 막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반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캠프에 참여하며 박 대통령을 도왔던 친박 인사 유영하 후보는 당의 결정을 수용했다. "개인적으로 억울하지만 당이 판단을 내렸다면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최고위 결정으로 주호영·류성걸 의원과 구성재 후보는 친정 소속 후보와 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들은 공천위 '컷오프' 결정 이후 잇따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김 대표의 '불공천' 방침이 유지됐다면 당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였다. 구 후보는 "어차피 당의 '불공천'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며 "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심각한 만큼 무소속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했다. 주 의원의 한 측근은 "당의 공천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가 다시 한 번 증명됐기 때문에 승리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했다. 반대로 이재오(서울 은평을)·유승민 의원과 송파구청장을 지낸 김영순(서울 송파을) 후보는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져 당선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