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 전시 중인 한 작품이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2인조 아티스트 그룹 '뮌'의 부부 작가 최문선(44)·김민선(44)씨가 지난 1월 시작한 '아트솔라리스(artsolaris.org)'란 작품이다. 가상의 인터넷 공간에 펼쳐지는 '웹아트(web art)'라 일반 관객은 잘 모르는데 미술계는 급소를 찔린 듯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작품이 정조준한 과녁이 미술계 내부이기 때문이다.
'아트솔라리스'는 작가·큐레이터 등 미술인들의 전시 정보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미술계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은하계처럼 무수한 별이 흩어진 형상이 등장한다. 미술계 분포도다. 별처럼 빛나는 작은 점들은 개별 미술인. 전시를 많이 할수록 점 크기가 커진다. 두 번 이상 전시를 함께 하면 두 점 사이에 선이 생기고, 전시 횟수가 많아질수록 선이 짧고 굵어진다.
28일 현재 844명의 미술인, 전시 777개가 분석 대상이 됐다. 전시는 주로 2010년 이후 공적 자금, 즉 세금이 들어간 국공립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 사회 공헌적 성격이 있는 기업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 전시다. 프로필을 보내오는 작가가 늘어나며 '미술 은하계'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
"독일에서 유학(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학)하고 돌아와 10여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어요. 중앙에 하나의 무대가 있고, 무대 아래 더 많은 작가가 있는데 그 무대에 올라갈 수 없으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피드백을 받을 수 없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안갯속 같은 미술계 구조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어요."
작업실을 겸한 서울 연희동 집에서 만난 '뮌'은 쏟아지는 관심이 어색한 듯 조심스레 말했다. 현재 가장 크게 빛나는 점은 기획자인 김선정(51) 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정보원 예술감독. 그와 함께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 작가 박찬경·배영환·안규철·양혜규·임민욱·정연두·김홍석 등 10여명이 태양계처럼 군집(群集)한 형태를 띤다. 전체 은하계에서 커다란 덩어리로 존재하는 유일한 무리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미술계의 강력한 카르텔을 보여준다'고 한다. 두 사람은 "어디에 무게중심이 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데이터 분석 결과, 한쪽으로 집중된 구조가 보였을 뿐"이라며 "한쪽으로 쏠렸다는 건 우리 미술계 체질이 허약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미술계 내부 고발적 작업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데이터 분석이 예술이냐" "주류 라인을 통해 무대에 오른 작가가 말할 자격이 있느냐" 같은 비판도 있고, "시원하다"는 지지도 있다. 이들은 "미술계 관계자들이 대체로 비판은 SNS상에 실명으로 하는데, 지지는 익명 댓글을 달거나 개인 이메일로 보낸다"며 "이 또한 미술계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이라 했다.
"5년 전만 해도 용기 없어서 못했을 작업"이라고 두 사람이 말했다. 그들을 변화시킨 건 강단에서 만난 젊은 미술 학도들이었다. "학생들이 중앙 무대만 쳐다보며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려고 들어요. 결국 우리 예술이 획일화되고 있었어요." 미술계의 네트워크를 보여줌으로써 이들이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성공하기 위해서 이쪽 끈을 잡아라"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 결승점을 무색하게 하자"는 얘기였다.
뮌은 조만간 '2.0 버전'도 만들 예정이다. 지금 버전에서 빠진 비평가, 한국 작가와 관련된 해외 미술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 우리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징적 인물이 추가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