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금융기관에서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를 대출받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사우디가 해외에서 돈을 빌려, 채권국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1991년 이후 25년 만이다. 당시 사우디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미국의 걸프전쟁 등에 따른 여파로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10억달러를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는 당초 5년 만기 조건으로 60억~80억달러 정도를 빌릴 계획이었는데 글로벌 은행들이 앞다퉈 돈을 대출해 주겠다고 나서 차입금 규모를 늘렸다”고 했다.
사우디의 해외 자금 차입은 저(低)유가에 따른 재정 적자가 일차적 요인이다. 2014년 중반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국제 유가는 최근 40달러 안팎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지난해 약 1000억달러(약 113조3000억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2014년 8월 7370억달러였던 외환보유고는 5927억달러로 떨어졌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재정 적자 규모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5%에서 올해 19%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우디는 오는 2018년까지 세계 최대 석유업체인 국영 아람코의 기업공개도 추진하고 있다. 지분 5%만 상장해도 5000억달러(약 567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는 충분한 ‘실탄’을 확보한 뒤, 근본적인 경제·사회 구조 개혁에 돌입할 계획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32) 부왕세자는 올 초 “사우디 경제가 석유 시대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현 국왕의 아들로,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경제 분야의 실질적인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오는 25일 사우디 경제·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포괄적 국가개혁 프로그램’을 발표할 예정이다. 석유 이외 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와 기술개발을 확대하고, 첨단·기술산업을 중심으로 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조세와 부동산 시장, 정부 시스템 개선 방안도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일간 아랍뉴스는 “무함마드 부왕세자는 총 2조달러(약 2270조원)를 들여 석유에 의존했던 경제 구조를 바꿔놓을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