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19일(현지 시각) 열린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뉴욕주(州)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압승했다. 트럼프는 60.5%의 득표율로 25.0%를 얻은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14.5%에 그친 테드 크루즈(텍사스) 연방상원 의원을 눌렀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57.9%의 득표율로 버니 샌더스(버몬트) 연방상원 의원을 16%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뉴욕주 경선에서 트럼프와 힐러리가 각각 압승하면서 2016년 미국 대선은 두 사람의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 전문 웹사이트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지난 18일 집계한 양자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는 힐러리가 48.8%를 차지해 트럼프(39.5%)를 9.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여름까지는 가상 대결에서 힐러리가 크게 앞섰으나 트럼프의 인기가 작년 가을부터 높아지면서 박빙을 유지하다가 최근에는 힐러리가 다시 앞서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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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本選)에서 두 사람이 만나면 이번 대선은 '비(非)호감 후보' 중 누가 덜 비호감이냐를 택하는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일 "최근 여론조사에서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도가 56%나 됐고, 특히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라며 "공화당이 65%의 비호감도를 보이는 트럼프를 제외한 적절한 후보를 택하면 11월 대선에서 백악관을 탈환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두 사람은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를 의식했는지 트럼프는 뉴욕 승리를 선언하면서 기존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에 대한 비난 대부분은 막말과 정제되지 않은 행동, 비상식적 주장 때문인데 우선 말투부터 바꿨다.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로비에서 연설하면서 단 한마디도 거친 언어를 쓰지 않았다. 크루즈를 계속 '거짓말쟁이 테드(lyin' Ted)'라고 부르더니 이날은 '크루즈 상원 의원(Senator Cruz)'이라고 깍듯이 모셨다. 힐러리를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내용도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과거 경선 승리 때 자기 이름이 붙은 스테이크와 생수를 전시하면서 과시욕을 부리던 모습은 사라졌고 좀 더 '대통령다워져(presidential)' 전혀 다른 후보처럼 보였다"고 했다.
트럼프는 기존 정치권에 불만이 많은 고졸 이하 백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극우 보수적 발언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는 중도층을 겨냥한 메시지도 보강하겠다는 생각이다. 힐러리에 대해서는 '이메일 스캔들'을 집중적으로 부각해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후보라는 점을 공격하고, 남편에 이은 권력의 '부부 물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여성 편력 등도 공격 포인트로 삼을 계획이다.
힐러리 캠프 측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국정을 가장 잘 아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생각이다. 서민과 유리된 '특권층'이라는 부정적 요소는 감추기보다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택했다. 최근 뉴욕에서 지하철을 제대로 타지 못했던 일을 유머로 승화시킨 게 대표적 사례다.
고액 기부를 받는다는 비난과 월가 유착설 등에 대해서는 경제 민주화 등을 제시하면서 정책으로 승부한다는 생각이다. 힐러리는 표의 확장성 면에서도 자신이 강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뉴욕 경선에서도 흑인과 여성의 표가 힐러리의 압승을 이끌었다. 대(對)트럼프 전략은 '대통령 무자격론'이다. 트럼프 발언 중에 여성·인종 비하 등을 찾아내 대통령감이 안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