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먹는 멕시코 음식은 정통 멕시칸이 아니다. 한국에서 먹는 중국 음식이 본토 음식과 다른 것처럼. 이태원 등지에서 만나는 멕시코 음식은 거의 대부분 텍스 멕스(Tex-Mex)라고 하는 미국식 멕시코 음식이다.

멕시코 인근 텍사스 주에서 생겨났다고 하는 이 '텍스 멕스'는 본토 멕시칸과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미국적 전통에 따라 치즈와 사우어 크림 같은 유제품, 소고기를 많이 쓴다. 조금 더 파고들면 큐민이라는 향신료를 자주 쓰고 토르티야(또띠야)를 만들 때도 메이즈(maze)라는 구운 옥수수 가루 대신 일반 밀가루를 쓰는 비율이 높다. 하드셸이라는 과자처럼 딱딱한 토르티야를 쓰는 것도 전형적인 텍스 멕스다. 여기에 콜라를 탄 버번 위스키와, 한없이 맹물에 가깝기로는 한국 맥주에 버금가는 미국 맥주를 곁들이면 미국 남부 사투리를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원조 좋아하는 한국인인 탓에 늘 본토 멕시코 음식이 그리웠다. 한국에서 노란 치즈 범벅 텍스 멕스가 아닌 몇백 년 전 사라져 간 아즈텍 문명의 자취를 맛보고 싶다면 서울 삼성동 '비야 게레로(Villa Guerrero)'가 답이다.

온통 하얀 벽에 몇 번을 가도 길을 헤매게 되는 미궁(迷宮) 코엑스몰 건너편, 삼성중앙역 7번 출구 바로 앞 골목으로 들어가면 기껏해야 3, 4층밖에 안 되는 빌라들이 빼곡하다. 여기를 보면 부동산 중개업소, 저기를 보면 보일러 가게가 있는 무표정한 강남 뒷골목에 '비야 게레로'가 있다. 간판은 없다. 대신 솥에 들어간 돼지가 그려진 현수막을 걸고 영업을 한다.

이곳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15년 초였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몇 개 안 되는 테이블과 두 명이 겨우 몸을 비비고 움직이는 주방이 보인다. 아마 그때쯤이면 현수막에 있던 천진난만한 돼지의 얼굴과 주인장이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그것은 속으로만 감탄하는 것이 예의일 터다. 그 주인장이 쓴 것이 거의 확실한 글씨의 메뉴판 속 살코기, 껍데기, 오소리감투, 혓바닥이란 단어의 행렬은 순댓국밥집을 방불케 한다.

오소리감투를 섞으면 5000원, 그렇지 않으면 4000원씩 하는 타코〈사진〉를 시키니 한쪽에선 철판에 토르티야를 굽고 한쪽에서는 고기를 꺼내 둥그런 나무 도마에서 네모난 칼을 들고 다지기 시작한다. 이름도 생소한 멕시코 맥주를 마시며 기다리면 곧이어 주인장이 멕시코 지역 이름인 '비야 게레로'에 가서 직접 배웠다는 타코가 모습을 드러낸다. 타코 위로는 멕시코에서 실란트로라고 부르는 고수가 한 움큼이고 옆에는 노란 레몬 조각이 놓여 있다. 부드러운 토르티야 사이로 쌓인 돼지 부속이 엿보이고 매콤하고 새콤한 살사 소스는 질펀하게 흘러 내린다. 타코를 입에 넣으면 지금껏 먹던 타코가 아님을 알게 된다. 바싹 마른 쇠고기를 싸구려 치즈로 감추던 그 맛이 아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대지 아래 구운 옥수수를 빻는 멕시코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맛이다.

그리하여 타코를 게걸스럽게 다 먹을 즈음에는 하나 더 주문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이 집을 알지 못한 채 진짜 멕시칸 타코를 먹지 않았던 지난날들을 후회할 차례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하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진짜를 맛 보았으니까 말이다.